[뉴스토마토 한동인·차철우 기자] 윤석열정부가 우크라이나에 300억원 규모의 군사 장비를 대여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실이 불법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군수품관리법상 군수품 대여는 국방부 장관의 권한인데, 국가안보실이 '장관 전결' 과정을 좌지우지했다는 겁니다. 이는 사실상 권리행사 방해로,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정부는 당시 단순 대여를 넘어 '반납 면제' 조항을 추가, 국가 재산을 빼돌렸다는 '위장 계약'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권 실세였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2023년 7월 16일(현지시간) 바르샤바 한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방부 내부 '찬반 들끓자'…안보실이 직접 나섰다
9일 <뉴스토마토> 취재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실의 자료를 종합하면, 윤석열정부 국가안보실은 우크라이나 군사 장비 무상대여 장관 전결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윤석열정부는 지난 2023년 7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약 10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에 장애물 개척전차를 비롯해 중·대형 기중기와 15톤 덤프트럭 등 17종의 군사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했습니다.
해당 장비들은 300억원 규모인데요.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어야 할 장비 정수 대비 적게는 40%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중 장애물 개척전차는 우리 군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오는 2027년에 보급하기로 예정된 장비입니다. 여기에 윤석열정부는 우리 군이 보유조차 하지 않은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대여한 셈입니다.
문제는 군사 장비 17종과 관련한 대여 계약서를 보면 '우크라이나 측 요청이 있으면 반납을 면제할 수 있다'라는 면제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겁니다. 계약서가 대여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반납 면제 조항을 통해 사실상의 무상 양도·원조 계약서인 셈입니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우리 장비의 반환이 어려울 것 같다"고 인정했고, 계약된 장비 모두 이미 불용 및 재산삭감 처리가 완료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군수품 관리법 제14조에 군수품 대여 조항을 보면 '국방부 장관은 각군의 운영이나 작전에 특별한 지장이 없다고 인정될 때 군수품을 대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결정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군조차 부족한 군사 장비를 대여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내에도 찬반이 갈렸다고 합니다. 이종섭 당시 장관까지 반대 의사를 피력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윤석열정부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넘어 살상용 무기까지 지원하려는 구상을 검토하면서 국방부 내부 반발이 거셌다고 복수 관계자들은 전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우리 군의 주력탄인 155mm 포탄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해당 포탄은 불용 처리가 불가합니다.
이때 우크라이나 지원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가안보실이 등장합니다. 군사 장비 지원 계약서의 결재는 국방부 장관 대신 투스타에 해당하는 군수품 담당 육군 소장이 전결했습니다. 해당 육군 소장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출장을 간 인물로, 군수사령관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전결 규정은 공무원의 결재 범위를 정하는 내부 규정이지만, 원 직무를 가진자의 권리 행사를 방해할 경우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범여권 한 관계자도 "장관 전결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실이 개입한 게 문제"라고 했습니다. 형법상 직권남용죄의 처벌 수위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전 정권 국가안보농단 폭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안보실 개입 당시 '국정원'도 동원…국회 자료 제출 요구 '묵살'
이뿐만이 아닙니다. 차관보급인 그가 우크라이나에 방문할 당시 국가안보실도 동행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국방부 차원에서 무기 대여가 '기부 행위'로 되면 안 된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를 국가안보실이 직접 압박하기 위해 동행했다는 겁니다. 국방부 장관에 대한 직접 압박이 국가안보실을 통해 이뤄진 건데요. 그 중심에 정권 실세인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있다는 의혹입니다.
이와 관련해 국회 외통위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에 "해당 계약건과 관련해 국방부가 책임 회피를 했다"며 "사실상 안보실의 전결로 진행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김 의원은 국가안보실 개입 의혹에 대해 "안보실은 국가 안보는 뒷전으로 미룬 채, 윤석열 일가에 대한 충성 경쟁에만 몰두하며 본분을 저버렸다"며 "권력의 하수인처럼 행동하며 오히려 안보를 정치화했고 우리의 안보를 끊임없이 갉아먹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가안보실 개입 당시 국가정보원도 동원됐다는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이 때문에 국회 정보위원회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에 국방부·안보실·국정원 관계자들의 우크라이나 출국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공무상의 해외 출장 내역이 대외비가 아닌 데다, 국비를 들여 출장을 갔음에도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공무상의 출장 내역이 엄연히 감사 대상인데, 이를 숨긴 겁니다.
윤석열정부는 비상계엄 선포 2달 전인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에 포탄 지원 등의 살상 무기 지원 확대까지 검토한 바 있습니다. 당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의를 열었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회의 직후 "방어용 무기 지원을 고려할 수도 있고, 한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공격용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윤석열씨의 '외환 유도' 흐름이라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를 지원하고 국정원 등을 파견하면서 북한을 우회 도발했다는 주장입니다. 김 의원은 지난 1월 <JTBC> 유튜브 프로그램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비상계엄에 있어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북한을 자극했던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며 그 중심에 김 전 차장이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한편 <뉴스토마토>는 김 전 차장에게 해당 의혹과 관련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다방면으로 접촉했지만, 응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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