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수출 중국전선 점검)'버티기 전략' 주효…특화 모델·기술로 만리장성 다시 넘는다
(②자동차·배터리)사드 후 판매 급감
현대차 전기차 ‘일레시오’로 재도전
LG엔솔…첫 전기차 배터리 납품이뤄
2025-07-09 16:21:21 2025-07-09 16:39:43
[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현대차는 베이징자동차와 손잡고 합작법인 ‘베이징현대’를, 기아는 장쑤위에다그룹과 ‘기아기차유한공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중국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2009년에만 81만대를 판매하며 독일 폴크스바겐(139만대)에 이어 중국 판매 2위에 오르기도 했던 현대차·기아는, 2010년대 중반까지 중국에서 연간 10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시장점유율 4~5%를 기록했습니다. 연간 2500만대 규모의 시장에서 5%는 125만대에 달하는 물량으로 결코 작은 비중이 아니었습니다. ‘코리아 인베이션’은 그렇게 이어지는 듯 했습니다.
 
중국 창저우시 베이징현대 딜러점. (사진=연합)
 
하지만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비롯됐습니다. 2016년 7월8일,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전격 발표했습니다. 이후 한중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습니다. 2017년 사드 배치를 둘러싼 외교 갈등 끝에 중국정부는 자국 내 중국인들에게 한국산 제품과 콘텐츠에 대한 소비를 금지하는 ‘한한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곧 반한 감정으로 이어지며 판매 급감을 불러왔습니다. 2016년 114만대였던 현대차·기아의 중국 판매량은 2017년 78만대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20만대까지 떨어졌습니다.
 
급격한 판매 감소와 현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 속에 현대차는 중국 5개 공장 중 베이징1공장과 충칭공장을 각각 2021년, 2024년에 매각했습니다. 2016년에 가동을 시작한 장쑤성 창저우 공장도 매각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몰락’에 가까운 결과였습니다.
 
현대차, ‘특화 모델’로 재건 시동
 
하지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협회(KAMA)와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순수전기차(BEV) 판매량은 630만3000대로, 2023년(496만5000대)보다 26.9% 늘었습니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전기차 시장에서 단 1%만 점유해도 6만3000대를 팔 수 있는 규모입니다. 이는 현대차·기아의 작년 국내 전기차 판매량(8만5000대)에 근접하는 수준입니다. 
 
현대차·기아는 반격의 실마리를 ‘전기차’에서 찾았습니다. 베이징현대는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현지 매체들을 대상으로 신차 공개 행사를 열고 전기차 ‘일렉시오(ELEXIO)’를 공개했습니다. 이 모델은 철저히 중국 소비자 선호를 반영한 현지 맞춤형 차량으로 배터리도 중국 비야디(BYD) 제품을 탑재했습니다. 일렉시오는 오는 8월 양산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현대차가 중국 현지 맞춤형으로 내놓은 스포츠유틸리티(SUV) 전기차 '일렉시오(ELEXIO)'. (사진=현대차)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과거 중국에서 두 자릿수 점유율을 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현지 특화 모델 및 ‘고급화 전략’ 부재를 꼽습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가격 경쟁력 확보와 함께 고품질 공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시장에서는 단순한 저가 전략보다는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이중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며 “아울러 지금은 수익성보다는 시장점유율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도 “현지 맞춤형 전기차를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철수’ 대신 ‘버티기’ 택한 K-배터리
 
완성차 업체들과 나란히 중국 시장에 진출한 K-배터리 3사 역시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사업을 접기보다 ‘버티기’ 전략으로 현지 생산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2004년 모회사인 LG화학 시절, 중국 난징에 배터리 공장을 세운 LG에너지솔루션은, 초창기 주로 소형 파우치 및 원통형 리튬이온전지를 생산하다 2014년부터는 전기차용 중대형 파우치형 배터리 생산에 돌입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2014년 6월 중국 민영 자동차 부품기업인 안경환신과 합작법인 ‘삼성환신 동력전지 유한공사’를 설립,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발을 디뎠습니다. 이듬해 시안 공장에서 본격 양산을 시작해 당시 중국 내 트럭 점유율 1위를 달리던 포톤 등 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기존에 브라운관을 생산하던 톈진 법인 역시 2006년부터 배터리 생산 라인으로 전환돼 현재는 원통형, 파우치 등 소형배터리 생산을 이어가며 중국 내 입지 강화를 노리고 있습니다. SK온도 2020년부터 현지 기업과의 합작(JV) 형태로 총 4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국에 진출한 역사는 오래됐지만 시장 지배력 면에서 K-배터리는 여전히 존재감이 미약합니다. 중국자동차배터리혁신연맹(CABIA)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CATL 42.87%, BYD 22.49%, CALB 7.53% 순으로 현지 토종 업체들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1.19%로 11위에 머물렀고, 삼성SDI와 SK온은 20위권 밖으로 추정됩니다.
 
K-자동차처럼 K-배터리도 중국에서 철수하지 않았습니다. 변화는 서서히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16일,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5대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인 체리자동차 자회사에 ‘46(지름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중국 완성차 업체가 만드는 전기차에 대규모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은 국내 배터리 업체 중 처음입니다. 계약 금액은 두 회사 합의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1조원대 규모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만큼, 전고체 배터리, 나트륨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확보를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지만 기술로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향후에는 중국 기업과도 맞붙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 교수도 “K-배터리가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전고체, 나트륨 등 신소재 기반의 기술로 차별화를 꾀해야 겨뤄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3사 중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와 관련해 가장 앞선 곳은 삼성SDI입니다. 삼성SDI는 2023년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했고, 3사 중 가장 빠른 2027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산업의 ‘테스트보드’라 불리는 중국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답은 결국 ‘기술’입니다. 한국기업들이 기술로 다시 만리장성을 넘고 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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