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상대로 25% 상호관세 부과 서한을 보낸 지 하루 만에 방위비 증액 압박에 나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향해 연간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의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동맹'보다는 '돈'이 먼저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전략이 극명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한·미간 막바지 통상 협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방위비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향후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와 무역, 안보를 연계하는 '원스톱 쇼핑'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돈' 앞에 '동맹' 없다…방위비 분담금 확대 요구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미국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우 성공한 많은 나라들에 군대를 제공한다"며 "한국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아주 훌륭하지만, 군사비를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나는 한국에 수십억달러를 지급하도록 만들었는데, 바이든(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걸 취소했다"고 비판하면서 "나는 한국에 '우리는 당신들이 1년에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며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를 재차 언급했습니다. 더불어 "그들(한국)은 난리가 났지만, 30억달러(인상)에 동의했다. 따라서 나는 전화 한 통으로 30억달러를 얻어냈다"고도 소개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는 지난해 대선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해온 것으로, 그는 대선 유세 기간 한국을 '머니머신'으로 부르며 방위비 증액을 재차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같은 수준은 한국이 전임 정부인 바이든 행정부 막판에 미국측과 한 합의에 따라 내년 지불할 방위비 분담금(1조5192억원)의 9배에 이르는 액수입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줄곧 요구해 왔습니다. 그는 첫 재임기간인 2019년 11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정(SMA) 협상 당시에는 50억달러(당시 약 5조7000억원)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2019년 한국이 낸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 이상을 올려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한국에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날 독일도 언급하며 "독일 주둔 미군은 우리에게 엄청난 손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5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회담에서 "독일에 약 미군 병력 4만5000명이 머무르고 있다"며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이자, 독일 경제에 이득을 주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 달 만에 독일 주둔 미군에 대한 평가가 '동맹의 이득'에서 '미국의 손실'로 바뀐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본격적인 한국 때리기…정부, 가용 자원 총동원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상호관세율 일방 통보 첫 타깃으로 삼은 지 하루 만에 한국을 향해 방위비 카드를 꺼내든 것은 한국과의 막바지 협상에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그는 일본과 함께 한국을 상호관세율 통보 1순위 대상으로 택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8월1일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서한을 보냈습니다.
아울러 '관세·안보 청구서'를 잇달아 내민 배경에는 전날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향후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가지 의제를 연계해 한국으로부터 최대한 양보를 이끌어 내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를 통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감축, 한국의 비관세 무역 장벽 완화, 방위비 분담금 및 국방지출 대폭 확대 등 청구서를 한꺼번에 내밀면서 '원스톱 쇼핑'으로 최대치의 결과를 내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안팎에선 한국 정부의 대응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관세 협상과 방위비 조율이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기에 이재명정부의 외교 능력을 평가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함께 나옵니다. 대통령실은 일단 속도도 중요하지만 국익이 더 먼저라며 최적의 협상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점을 찾아 정상회담에 나서겠다는 전략입니다. 정부·여당은 국익을 위해 가용 가능한 외교 자원을 총동원한다는 방침입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차라리 원스톱 쇼핑으로 한꺼번에 하면 나을 것 같지만, 관세 협상에 방위비 증액을 함께 논의할 것 같진 않다"며 "방위비 증액 압박은 관세 협상에 압력을 넣기 위한 하나의 수단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관세 협상 이후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것이라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며 "미국의 오락가락 행보에 바로 대응해선 안 되고, 우리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단순 관세 협상을 넘어 이번 협상은 새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 외교, 산업 등 협력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이냐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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