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국내 외환시장이 '트럼프발 관세 청구서'에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서한 공개에 장중 1370원대로 올라서는 등 불안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다만 발효 시점까지 협상 시간이 남아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관세 리스크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에 연쇄적인 급등세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정부는 국내 금융시장이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즉각적이고 과감한 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내수 부진 장기화 속 트럼프발 관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한국 경제의 험로가 예상됩니다.
장중 1370원대 등락 거듭…'트럼프 변덕 학습효과'에 소폭 상승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3원 오른 1373.1원으로 출발해 0.1원 오른 1367.9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등 14여개 국가에 예상보다 높은 관세율이 적힌 서한을 통보하자 관세 리스크 확대를 반영하면서 장중 1370원선에서 등락을 거듭했습니다. 장중 환율이 1370원선을 웃돈 것은 지난달 23일 이후 약 2주 만입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 앞으로 공식 서한을 보내 "8월1일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불과 25%의 기본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통보했습니다. 다만 "한국이 시장을 개방하고 비관세 장벽을 철폐한다면 관세는 상향도, 하향도 가능하다"면서 "한국은 결코 미국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의 여지도 남겼습니다.
시장에서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재부각되면서 변동성 확대를 우려합니다. 일각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원·달러 환율이 138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다만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과 함께 통보된 관세율 수준이 지난 4월 관세율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환율이 1500원대에 육박했던 '4월 관세 쇼크' 재연 가능성은 작다는 판단입니다.
이날 외환시장은 발효 시점까지 협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상호관세가 처음 발표됐던 지난 4월과는 대조적인 모습도 엿보였습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4월 상호관세 당시처럼 연쇄적인 주가 급락이나 환율 급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관세 리스크에 내성과 학습효과가 생겼고, 각국이 관세율을 낮추기 위한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변동성 확대시 즉각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이 이날 긴급 시장점검회의를 열거 미국 관세 관련 동향과 시장 영향을 점검하면서 "미국 관세 부과의 진행 양상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행은 "관계기관 긴밀한 공조 하에 미 관세 관련 동향과 금융·실물경제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시장이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돼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관세 리스크에 경기 진단 '먹구름'…2차 추경은 긍정 요인
사실상 미국발 관세 부과 유예 시점이 3주가량 연장됐지만,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대외 불확실성은 여전합니다. 올해 우리 경제는 0%대 성장이 예고된 가운데, 경제 하방 압력이 커지면서 새 정부의 노력에도 녹록지 않은 게 한국 경제의 현실입니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하자마자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등 내수 살리기로 경제 회복 불씨를 지피고 있으나, 관세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실제 이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7월 경제동향'을 보면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KDI는 지난 5월 1차 추경 집행에도 "최근 우리 경제는 건설업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외 여건도 악화하며 경기가 전월과 비슷한 정도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지난달 내놓은 경기 전반이 미약한 상태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사라졌지만, 동일한 인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KDI는 지난 5월 2년여 만에 '경기 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후 비슷한 판단을 유지하고 있는데, 7월 진단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 5월부터 집행된 1차 추경 효과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특히 이번 KDI의 경기 진단에는 최근 공개된 5월 경제지표와 6월 수출 동향 등이 반영됐습니다. KDI는 "건설업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 제조업도 조정되며 생산 증가세가 약화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도체 수출과 생산이 양호한 흐름을 유지했으나, 자동차 등 관세가 큰 폭으로 인상된 품목을 중심으로 대미 수출이 부진했으며 이에 따라 제조업 생산의 증가폭도 축소됐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재해 극복 등에 방점이 찍힌 1차 추경과 달리 2차 추경안에는 경기부양책이 포함되면서 일부 내수 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KDI는 내다봤습니다. KDI는 "소비심리가 회복세를 보이며 내수 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소비는 여전히 미약하지만 소비 심리는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6월 소비자심리지수(108.7)는 전월(101.8)에 이어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KDI는 "고금리 기조가 점차 완화되고 2차 추경이 편성되면서 향후 소비 회복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상호관세 유예 종료가 다가오면서 통상 관련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습니다.
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 코스닥지수 및 환율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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