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배임죄 폐지 공식화
당정,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 발표
범죄 처벌 공백에 '대체 입법' 마련키로
경제계 "기업 숨통"…야당 "이재명 방탄용"
2025-09-30 17:19:17 2025-09-30 18:18:47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정부가 70여년 만에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대체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과도한 경제형벌 규제가 기업의 창의적인 혁신을 저해하고 단순한 실수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일반 국민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입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7월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에서 과도한 경제형벌로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더불어 정부는 배임죄를 포함한 110개 경제형벌 규정도 함께 손볼 예정입니다. 
 
다만 배임죄 폐지의 경우 대체 입법에 관한 기존 연구가 많지 않아 법제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경제계는 이 같은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에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힌 반면, 야당은 이 대통령을 구하기 위한 법 개정이라며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기업활동 저해' 배임죄 폐지·대체 입법 마련
 
당정은 30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배임죄 폐지를 골자로 한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정은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구상했다"며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없도록 대체 입법 등 실질적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당정은 힘을 모아 경제형벌 중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한 110개 형벌 규정을 우선 개선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정부는 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지난달 초부터 TF를 가동, 전 부처에 걸쳐 개선 과제를 발굴했습니다. 그 결과 신속한 추진이 가능하고, 국민 체감도가 높은 110개 형벌 규정을 우선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 임기 내에 개정안을 일괄적으로 제출할 계획입니다. 향후 1년 이내에 전체 형벌 관련 규정의 30%를 정비한다는 게 목표입니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형법상 배임죄 폐지입니다. 현재 배임죄는 형법의 일반·업무상배임죄, 상법의 특별배임죄 등으로 나뉘는데, 배임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가중처벌이 가능한 형법상 배임죄를 없애고 이를 대체할 법을 만든다는 구상입니다. 범죄 요건이 모호하고, 적용 범위가 넓어서 기업의 경영활동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과입니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있었던 배임죄가 72년 만에 사라지게 됩니다. 
 
다만 정부는 배임죄 폐지 추진이 필요하나, 중요 범죄 처벌 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대체 입법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임직원의 법인 자금 사적 사용·영업비밀 유출 등 기업의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와 같이 배임죄로 의율돼온 범죄 유형 중 일부는 여전히 처벌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뒤따랐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배임죄를 아예 폐지할 경우 범죄 처벌의 공백이 생긴다"며 "현행 배임죄보다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특별법 제정이나 개별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경미한 경제형벌, '과징금·과태료'로 전환
 
아울러 선의의 사업주를 보호하는 장치도 생깁니다. 정부는 책임 소재와 무관하게 사업주에 대한 과도한 처벌로 투자·고용 등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최저임금법 위반 관련 양벌 규정에 대해 충분한 주의 의무를 다한 사업주에게는 면책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추후 전 부처 양벌 규정을 전수 조사해 행위자 외 법인·사업주를 처벌할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는 양벌 규정 폐지도 검토할 계획입니다. 
 
또 형벌을 완화하는 대신, 금전 책임을 강화합니다. 징역·벌금 등 형사처벌 중심의 경제형벌이 사업주의 형사처벌 리스크만 키울 뿐, 위법행위 억제 효과와 피해자 보호에는 미흡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입니다. 정부는 형벌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도입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화물 트럭 소유자가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을 받지 않고 차량을 개조한 경우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현재는 징역 1년 이하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를 최대 1000만원까지 부과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소상공인이 경미한 행정 의무만 위반해도 형벌을 적용했던 규정에 대해서는 행정제재인 과태료를 매기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놓으면서 38개 법률, 68개 경제형벌 규정이 포함됐습니다. 이 밖에 즉시 형벌을 내리기보다 시정명령·원상복구명령 등 행정조치를 먼저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만 처벌하는 '선 행정 조치-후 형벌 부과' 방안도 9개 법률, 18개 규정에 걸쳐 마련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배임죄 폐지의 경우 대체 입법에 관한 기존 연구가 많지 않아 법제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봅니다. 때문에 연내 처리는 어렵고 내년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국민의힘은 "배임죄 폐지는 이 대통령의 방탄용"이라며 반대 입장을 드러냈으며, 경제계는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TF 당정협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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