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핵심 부품의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장 부품이 차량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로 떠오르면서,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할 경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전동화 시대에 핵심이 되는 배터리부터 반도체까지 직접 설계하고 개발하는 역량을 확보해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왼쪽부터) 현대모비스 시스템반도체실 이희현 상무, 현대모비스 이규석 사장, 반도체사업담당 박철홍 전무. 현대모비스 이규석 사장이 반도체포럼 개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현대모비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배터리와 반도체 내재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와 함께 자체 설계 기술 확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겪었던 공급망 위기를 계기로, 핵심 부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더라도 개발과 설계 기술은 보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룹 내에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의 내재화는 반도체 부문에서 먼저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기아와 함께 반도체 공용화 및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차량에 사용되는 반도체 종류를 줄이는 대신 품목당 구매량을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자동차 한 대에는 수백 개의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표준화를 통해 구매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지난 29일 ‘제1회 현대모비스 차량용 반도체 포럼’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차량용 반도체의 국산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 23곳이 참석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뜻을 모았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이 시장이 연평균 9%씩 성장해 2030년 1380억달러(약 20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세계 100대 차량용 반도체업체 중 국내 기업은 5곳에 불과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3~4%에 머물고 있습니다. 분야도 주로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에 한정돼 있습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인도네시아 배터리셀 합작공장인 HLI그린파워를 방문해 전극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배터리 내재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2023년 12월 미국 특허청에 출원한 ‘압력 장치가 구비된 전고체 배터리 시스템’ 특허가 최근 공개됐는데, 이 기술은 전고체 배터리 셀에 일정한 압력을 가해 충전과 방전 상태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2030년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 대량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개발 역량 확보를 위해 2032년까지 9조5000억원을 투자합니다. 이 자금은 배터리 연구개발과 생산설비 구축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현재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경기도 안성에 배터리 연구단지 및 GWh(기가와트시)급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처음으로 핵심 설계에 참여한 하이브리드 배터리는 2023년 출시된 5세대 싼타페 하이브리드를 시작으로 K8 하이브리드,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등에 순차적으로 탑재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이러한 움직임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추세와도 일치합니다. 테슬라는 이미 배터리 셀을 직접 생산하고 있고, 폭스바겐과 GM(제너럴모터스)도 배터리 합작법인을 통해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테슬라가 자율주행 칩을 자체 개발하는 등 완성차업체들의 핵심 부품 내재화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차 시대에는 배터리와 반도체가 차량 경쟁력을 결정하는 만큼, 핵심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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