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면서 '편면적 구속력' 제도의 법제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소액 분쟁의 기준금액 설정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편면적 구속력은 소액 분쟁에 한해 금융사가 당국의 분쟁 조정 결과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제도입니다.
소액사건 기준 2000만원 검토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소액 금융 분쟁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금융사거 발생 피해 금액과 분쟁조정 후 사적 화해로 이어진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편면적 구속력은 소비자가 복잡한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금감원의 분쟁 조정안을 민원인이 수락하면 금융사의 수락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금융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며 무조건 조정안을 따라야 합니다.
금융당국은 조직 개편 무산으로 혼란이 일단락하자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에 빠르게 나서겠다는 방침입니다.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가 백지화했지만 소비자보호 요구가 사라진 것은 아닌 만큼 정책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두고 금융위와 금감원은 과거 이견을 보였었습니다. 금융위에서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금융사의 재판상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었고, 금감원은 문재인정부 당시 주도적으로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추진했었지만 정권이 바뀐 후 반대 의견으로 선회한 바 있습니다.
과거 금융권에선 "금감원이 배상 수준을 결정하는 것도 모자라 강제하는 사법부 역할까지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만 당국입장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 등 조직개편이 무산되면서 정부의 소비자보호 강화 기조가 약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적용하는 소액 분쟁 사건의 기준금액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당국은 금소법상 분쟁 조정 이탈 금지 기준 등을 고려해 '소액 분쟁 사건'의 기준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액사건심판법을 고려하면 소액 사건의 기준은 최소 2000만원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이재명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금융개혁 주요 과제 중 하나로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을 꼽으면서 소액사건 심판법상 소액 사건 기준을 3000만원보다 적은 1000만원 또는 2000만원으로 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소액 기준 낮으면 실효성 의문"
정치권에서는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소액 금융 분쟁 사건에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상임위 심사 중에 있습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과 시행령에 명시된 소액분쟁 금액은 2000만원 이하입니다.
일각에서는 금액 한도를 소액 민사소송 3000만원 이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3000만원 이하로 기준을 정하면 부실 사모펀드 사태처럼 피해 규모가 큰 대형 금융사고에 대해서는 편면적 구속력 행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도입한 영국과 호주, 독일, 일본 등도 일정 금액 이하에 대해서만 이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금융감독청(FCA) 산하에 금융분쟁조정기구인 금융옴부즈만서비스(FOS)를 두고 있는데요. FOS가 제시하는 조정안을 민원인이 받아들이면 금융사도 조정안을 수용해야 합니다.
영국은 당초 분쟁금액이 10만파운드(한화 1억8000여만원) 이하 사건에 대해서만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했지만 35만5000파운드(6억5000만원) 이하 사건까지 금액을 늘렸습니다. 호주도 50만호주달러(한화 4억4000만원) 이하 사건까지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했고, 독일은 1만유로(1500만원)를 상한으로 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분쟁조정 사건의 소송 중지 제도가 더 실효성 있도록 운영할 수 있게 보완 절차도 마련했습니다. 현재 분쟁조정 사건에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을 맡은 법원은 조정이 종료될 때까지 소송 절차를 중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에 이를 통지하는 절차가 없어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잦았습니다. 금융위는 분쟁조정위원회에 회부한 사건에 소송이 제기되면 금감원장이 법원에 통지하는 절차를 담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습니다. 개정안은 공포 3개월 후 시행합니다.
전문가들은 소송 중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 당사자 간 조정 절차에 집중할 수 있어 속도가 빨라지고 소비자로서도 조정에 따른 합의에 따라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병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감원 분쟁 조정 결정과 편면적 구속력 인정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금융사와 일반 소비자 간의 정보력 격차, 경제적·지적 능력의 차이를 고려할 때 분쟁 조정 결정에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다만 편면적 구속력 도입 과정에서 금융권의 반발도 뒤따를 전망입니다.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주장의 주된 근거는 금융사의 '재판 청구권 침해'입니다. 재판받을 권리는 헌법 제27조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입니다. 다수의 금융투자상품 불완전판매 분쟁 조정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의 조정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구인데, 조정은 당사자 간 합의가 기본 원칙이다"라며 "분조위의 조정안이 법원의 판결과 달랐던 사례가 상당한 만큼 강제성을 부여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에서 빠져 현행 체제를 유지하게 된 금융당국이 ‘소비자보호’를 강조하면서 ‘편면적 구속력’ 제도의 법제화 작업을 최우선 과제로 도입할 방침이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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