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이진하 기자]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 사고로 인한 정부 행정 시스템 장애가 지난 26일부터 나흘째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복구율은 고작 10%를 웃돌았습니다. 500여개의 행정정보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29일 오전부터 구청, 주민센터, 우체국, 은행 등이 민원인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우려했던 '월요일 민원 대란'이 현실화된 겁니다. 핵심 서비스 정상화까지는 최대 4주가 걸릴 전망이어서 추석 연휴 이후에도 각종 혼란이 예상됩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나흘째인 29일 광주 북구 용봉행정복지센터에 오전 추석을 앞두고 민원 해결을 하러 온 주민들이 붐비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산망 장애 근본 대책 만들라"…이 대통령, 김 총리에 거듭 지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국정자원 화재로 중단됐던 647개 시스템 가운데 73개가 정상화됐습니다. 복구율은 11.3%입니다. 이 가운데 최우선 관리 대상인 1등급 업무 전체 36개 중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인터넷우체국(EMS·메인·모바일·우편 서비스·우표포털영문), 나라장터, 주민등록 시스템 등 16개(44.4%)가 복구 완료됐습니다.
그러나 화재로 전산실이 전소된 96개 핵심 시스템은 대구 민관협력 클라우드센터로 옮겨야 하는데, 국정자원 준비에 2주·시스템 구축에 2주 등 총 4주가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소된 시스템에는 국민신문고 서비스, 안전디딤돌, 통합 보훈, 지진재해·지진해일 대응 시스템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정부는 당분간 장애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96개 시스템에 대해서는 오프라인 창구와 대체 사이트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또 장애 복구 시간을 고려해 9월 재산세 납부 기한 등 각종 세금 납부·서류 제출 기한을 연장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서류를 발급받을 때 발생하는 수수료도 면제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도 수기 처리 등 대체적 행정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화재 원인에 대해선 정부가 분석 중입니다. 다만 무자격 업체가 배터리 운반에 투입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차장(행정안전부 차관)은 "배터리 이전 준비 중 화재가 발생했고, 이때 작업자는 자격을 보유한 전문 기술자"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국가 주요 부처의 핵심 행정 서비스가 사실상 하나의 전산센터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즉 시스템 이중화와 분산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정부가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기반 행정을 강조해온 것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백업·재난 복구 체계가 허술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진행된 정례 주례 보고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행정전산망 장애와 관련해 "같은 장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반적 점검과 근본적 대책을 만들라"고 주문했습니다. 이 대통령에 이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도 중대본 회의에서 정부 전산시스템 마비 사태에 대해 "이번 장애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큰 불편을 끼쳐드렸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전산망 마비로 행정 '올스톱'…우체국·은행 '민원 대란'
전산망 마비에 따른 피해는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무인민원발급기부터 온라인 행정 서비스, 택배, 은행 업무까지 전방위적인 영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먼저 공공서비스인 교육부의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와 '교육비 원클릭 시스템'은 복구가 지연되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저소득층 교육 급여나 수급자 증명서 발급도 온라인이 아닌 직접 방문으로 바뀌면서 불편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부 구청에선 외국인 민원 업무도 중단된 상태입니다.
우체국은 등기·택배 접수로 차질을 빚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택배용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현금을 인출하거나, 신선식품 접수가 거부돼 발길을 돌리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농수산물 등 배송의 차질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금융권 업무 차질도 이어졌습니다. 이날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모든 신용카드사는 주민등록증 및 모바일 신분증을 활용한 인증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습니다. 업계는 정부 시스템 점검이 완료되는 대로 관련 서비스를 재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은행에서는 현재 주민등록증을 활용해 업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발급된 실물 운전면허증, 여권, 외국인등록증, 모바일 신분증이 있어야 비대면 계좌 개설이나 체크카드 발급 등의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데요. 그러나 화재 사고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지 못했다면 은행 창구에 직접 방문해도 업무 처리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부 대출 상품 이용도 어려워지면서 국민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습니다. 공공 마이데이터 서비스 자체가 중단되면서 심사에 이를 활용하는 일부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 상품들은 신청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생활비 등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려던 국민들의 어려움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거래도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전입 신고, 확정 일자 신청, 임대차 계약 신고 등 주요 부동산 관련 민원이 중단됐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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