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여파로 카드사와 보험사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주민등록증 활용이 중단되면서 일부 서비스 이용에 차질이 발생했는데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에게 돌아갔습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카드사들은 26일 저녁 8시부터 일부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각 사는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정부 시스템 긴급 점검에 따른 서비스 일시 중단 사실을 안내했습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26일 국정자원 화재로 행정 전산이 마비되면서 일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면서 "카드사가 어떻게 하기보단 정부에서 복구를 빨리할수록 이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카드사도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화재로 중단된 카드사 서비스는 대표적으로 △카드 발급 주민등록증 확인 △모바일 신분증 인증 △미성년자 체크카드 신규 가입 △국민행복카드 바우처 결제, 신청, 전환 등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 지역 변경 신청 △우체국 체크카드 결제 △국민비서 서비스 △공공마이데이터 활용 서비스 등입니다. 전날 복구된 우체국 체크카드 결제와 이날 오전 복구된 모바일 신분증 인증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능은 여전히 마비된 상태입니다.
카드사는 카드 신규 발급이나 카드론 신청 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요. 현재는 주민등록증을 통한 확인이 불가능해 카드 발급 등이 중단됐습니다. 주민등록증 대신 모바일 신분증이나 운전면허증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모바일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이용이 제한됩니다. 또한 미성년자의 체크카드 신규 가입도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시스템도 마비되면서 '국민행복카드' 사용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습니다. 임신·출산 진료비, 첫만남이용권, 아이돌봄서비스, 에너지바우처 등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기저귀·조제분유·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등 물품 바우처 신규 신청과 전환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카드사들의 서비스가 중단되자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 소비자는 "추석을 앞두고 이게 무슨 난리냐"면서 "1개 층에 불이난 게 금융권까지 타격을 입히면 어쩌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다른 소비자는 "운전면허증 없는 사람들은 인증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면서 "복구가 2주나 걸리면 2주 동안 인증을 못 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보험사들도 이번 화재 사태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주민등록증 실물 확인이 중단되면서 정부24 전자지갑, OTP 발급, 퇴직연금 IRP 신탁형 신규 가입, 고객확인의무(CDD/EDD) 등 주요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주택화재·사업장화재·풍수해 보험 등 일부 상품은 가입이 막혔고, 일부 저축보험도 제약을 받았습니다. 월 납입보험료가 25만원 이상인 보험 가입 시에도 주민등록증을 통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해 고객 불편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용대출, 장기보험신용대출, 보험계약대출 등 주민등록증 인증이 필요한 업무도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일부는 운전면허증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운전면허증이 없는 경우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주택담보대출 신청 과정에서 공공 마이데이터 활용이 필요한 부분 역시 제약을 받아 업무 처리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운전면허증을 활용할 수 있다"면서도 "정부의 복구 속도가 빨라 이번 주 내에는 대부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습니다. 현재 일부 보험사는 주민등록증 실물 인증이 재가동됐습니다.
사진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로 온라인 복지 서비스, 정부24 등 주요 업무 시스템이 중단된 29일 대구시청에서 직원이 민원인 이용 불편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편 국정자원은 2023년에도 행정전산망 장애를 겪었는데요. 그럼에도 정부는 민간기업 질타에 그친 채, 정부 기관에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민간기업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시스템에는 제대로 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은 셈입니다. 한 층에만 화재가 발생했을 뿐인데도 국가적 마비가 초래된 것은 사실상 대응 체계가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주요 전산 데이터가 제대로 이중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염흥렬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정부 서비스는 국민 삶과 연결되는 필수 서비스"라면서 "정부 시스템의 회복력을 위해 데이터의 이중화, 삼중화를 통한 다원화한 데이터 센터를 구축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어 염 교수는 "민간 서비스가 중단됐던 사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무게감이 큰 만큼 조속한 서비스 복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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