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보험료 카드 납부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표류하면서 사실상 보험사와 카드사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처음 등장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며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 사이 소비자 선택권만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22대 국회 논의 '전무'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현재 계류 중입니다. 이 개정안은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카드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발의 이후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하며 사실상 폐기 수순에 놓였습니다.
정무위 관계자는 "정무위에서 보험료 카드납 의무화에 대한 공감대가 없어 단 한 번도 논의 대상에 오르지도 않았다"면서 "공통적인 공감대가 없으면 다른 법안에 밀려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해당 개정안은 현재 제동이 걸려 진척이 없다"며 "사실상 보험사와 카드사끼리 자율로 가는 가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소비자가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납부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금융당국은 보험료 카드납 필요성에 공감해 2018년부터 보험사에 카드납 현황 공시를 의무화했는데요. 자율 공시를 통해 카드납 허용을 자연스럽게 확대하도록 유도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관련 지표가 처음 집계된 2018년 상반기와 비교해도 개선 속도는 더딘 상황입니다.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전체 손보사의 보험료 신용카드납 지수는 지난 상반기 30.0%로, 2018년 상반기(25.1%) 대비 4.9%p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같은 기간 생보사의 카드납 지수는 4.1%로, 3.0%에서 1.1%p 개선되는 데 그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험료 카드납 지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주요 원인은 보험사가 일부 상품에만 카드 결제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카드로 받으면 결제 과정에서 카드사에 2% 수준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수수료만큼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카드납 확대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특히 생보사는 보험료 금액이 큰 저축성보험·변액보험 등 장기 상품이 많아 카드 결제 시 발생하는 수수료 부담이 더욱 크게 작용합니다. 이 때문에 손보사보다 카드납 허용에 훨씬 소극적입니다. 현재 생보사들이 판매하는 장기보험 중 신용카드 납부가 가능한 상품은 세 종류에 불과합니다.
또한 보험사마다 카드납 방식과 적용되는 상품이 제각각이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혼란이 적지 않습니다. 카드납이 가능하더라도 특정 카드사만 허용하는 식의 제한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032830)은 카드납을 허용하지만
삼성카드(029780)로만 납부할 수 있도록 조건을 걸어두고 있습니다. 신한라이프 대부분 상품에 전 카드사의 카드납이 가능하지만, 두 개 상품은 신한카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료를 카드로 받으면 보험사 비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전체적인 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며 "소비자 선택권을 위한다고 하지만 보험료가 오르면 실익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보험사마다 카드납 방식이 모두 달라 고객센터나 담당 보험설계자에게 문의해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카드업계 "숙원사업이지만 쉽지 않아"
보험료 카드납 의무화 논의는 19대 국회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2012년 당시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이 보험료를 신용카드·직불카드·전자화폐·전자결제 등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는 총 4건, 21대 국회에서는 총 2건, 22대 국회에서는 1건이 발의됐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국회 내 공감대가 약해지면서 관련 법안 발의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2023년까지만 해도 국정감사의 단골 이슈였던 보험료 카드납 문제는 지난해 국감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췄습니다. 2025년 정무위 국감에서도 관련 질의는 없었습니다. 국회가 사실상 관심을 거두면서 보험료 카드납 의무화 논의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보험료 카드납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입법조사처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력이 적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점 △보험료 인상이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점 △소비자 간 형평성 문제 △결제 편의 제공의 효과가 불분명한 점 △납부 방식을 자율에 맡기는 해외 기준 등을 이유로 자율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적절한다고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카드로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상품이 제한적이다 보니 소비자 불편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카드 납부가 가능한 경우라도 매달 결제할 때마다 고객센터와 설계사에게 별도로 결제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애초에 카드납이 가능한 보험사를 찾아 가입하려 하지만, 각 사의 기준이 제각각이라 실제로는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카드사들은 보험료 카드납을 위한 법 개정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비자 선택 폭이 넓어질뿐더러 카드사 수익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보험료 카드납은 카드업계의 숙원과제이고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는 만큼 소비자에게도 선택지를 넓힐 수 있어 긍정적"이라면서 "다만 업계 간 주장하는 수수료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도입이 어렵다"고 언급했습니다.
사진은 서울에 위치한 보험사 내부의 창구 안내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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