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은행권이 위험가중자산(RWA) 관리를 강화하면서 기술신용대출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신용대출은 수한 기술력에도 담보 등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에 낮은 이자로 대출해 주는 상품인데요. 가계대출 규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중은행이 지난해 기업대출을 크게 늘렸지만, 기술신용대출은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술신용대출 150조 원대로 감소
6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12월 기준 159조2071억원으로, 전년 대비 7.07% 감소했습니다. 2021년 2월 이후 처음으로 150조 원대로 떨어진 것입니다. 같은 기간 기술신용대출 건수도 4만9617건 줄어 11.67% 감소했습니다.
반면 기업은행은 기술신용대출을 크게 늘렸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기업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15조 466억 원으로 11.15% 증가했으며, 대출 건수도 1만 3000여 건 늘어났습니다. 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중소기업 중심의 대출 확대와 유망 기업 발굴에 집중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중은행들은 대기업 중심으로 대출을 늘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820조 6,225억 원으로 6.95%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대기업 대출이 16.10% 급증해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4.97%)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시중은행들은 기술신용대출 감소의 원인으로 금융당국의 기술금융 개편을 들고 있습니다. 2023년 7월부터 시행된 개편안은 병·의원, 소매업 등 비기술 기업에 대한 기술평가를 제한하고, 기술신용평가(TCB) 기준을 강화해 대출 실적을 줄였습니다. 기존에는 기술금융 실적을 높이기 위해 비기술 기업에도 대출이 쉽게 나갔지만, 새로운 제도 아래에서는 엄격한 심사가 적용되면서 대출 취급이 감소했습니다.
기술금융 제도 개선으로 대출 실적 부풀리기가 사라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리스크 관리 강화로 인해 기술기업들이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업무 창구. (사진=뉴시스)
우량대출 늘리기 집중
은행권이 올해 RWA 관리를 강화하면서 기술기업 신용대출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4대 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RWA는 853조8167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전년 동기(777조8851억원)보다 9.76% 증가한 수준입니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신한은행의 지난해 4분기 위험가중자산이 223조1599억원으로 전년 동기(198조 5849억원)보다 12.38% 늘어나며 1년 새 증가폭이 가장 컸습니다. 이어 KB국민은행(235조5288억원)과 우리은행(191조9440억원)도 9%대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은행은 대출과 미수금, 예치금 등 각종 자산에 위험도를 달리 적용하는데요. 대출만 해도 대기업 대출은 중소기업에 비해 위험가중치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의 경우 국내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외화대출 가중치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외화대출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오를수록 위험도가 커지는 구조라 원화 약세는 파생상품 관련 위험가중치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문제는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할수록 대표적인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금융 업계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CET1 비율이 0.01~0.03%p 하락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CET1은 보통주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인데, 수치가 높을수록 대출 리스크 흡수 능력이 높다는 뜻입니다.
RWA가 낮은 우량 대출 위주로 영업하면 리스크 관리에는 효율적이지만, 기술신용대출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CET1을 12.5% 이상으로 유지해 주주환원을 높이기 위해서도 RWA를 낮게 관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에 따라 기술신용대출을 올해 크게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이 늘어나면 수익과 RWA 모두 늘어나게 되는데 올해는 지주의 밸류업 목표가 있기 때문에 건전성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한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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