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국민약속 '파기' 수순
이탄희 '배수진'…75명 위성정당 금지법 발의
이재명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병립형 회귀 시사
2023-11-29 16:52:12 2023-11-29 18:19:07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시사했습니다. 이른바 '위성정당 방지법'(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라는 당내 요구가 거세지자 제동을 걸기 위함이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대선 공약을 파기하는 부담도 짊어졌습니다. 지난 9월 불체포특권 약속을 저버린 지 두 달 만에 또다시 스스로 '파약'에 나선 셈입니다. 
 
파장이 커지자 민주당은 29일 예정된 의원총회를 하루 순연했습니다. 당초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선거제 개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려 했는데요. 이 대표가 병립형 회귀를 시사한 것에 대해 당내 반발이 격화되자 이에 부담을 느끼고 일정을 미룬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 안팎의 요구에도 이 대표가 끝내 대국민 약속을 깨는 길로 들어선다면, 당 내홍도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검사 탄핵을 앞둔 상황에서 '단일대오'가 시급한 민주당의 앞길에도 적신호가 켜질 전망입니다.
 
불체포특권 이은 두 번째 '파약'거센 반발에 의총 '전격 연기'
 
민주당은 이날 오전 "보다 많은 의원들의 참여 속 선거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더 충분한 시간의 논의를 위해 30일 오후 1시30분 의총을 개의해 오후 2시 본회의 산회 후 다시 의원총회를 속개해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공지했습니다. 민주당은 "본회의가 열리는 날에 맞춰야 지방 의원들까지 참석해 보다 충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의총 연기의 배경을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이 대표를 향한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정면충돌'을 우려했다는 것이 다수의 평가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집단반발의 움직임은 이 대표로부터 비롯됐습니다. 당 주류인 친명계가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이 대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분위기만 엿봤습니다. 그러나 김상희 의원이 발의한 '위성정당 방지법'에 75명의 의원들이 동참하고 이탄희 의원이 지역구(용인정) 불출마를 꺼내드는 등 배수진을 치자 이 대표로서도 나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28일 오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 결심을 내비쳤습니다. 이 대표는 "만약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 이 폭주와 과거로의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며 총선 승리의 당위성을 강조했는데요. '병립형으로 해야 한다'는 한 시청자의 댓글에 "어쨌든 선거는 결과로 이겨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길' 언급한 비명계김부겸·이낙연·김동연도 '반발'
 
민주당 내에서 병립형 회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상황에서 이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혁신계를 자처하는 비명(비이재명)계 정치 세력 모임 '원칙과상식' 소속 김종민 의원은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재명식 정치에 반대한다"며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하면 민주당은 영원히 못 이긴다"고도 했습니다. 김 의원은 특히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를 택하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이겨서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어야 이기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원칙과상식'도 "한낱 기득권 지키겠다고, 국민의힘 이겨보겠다고 결의 따위, 약속 따위 모른체 하면 그만이냐"며 "당의 명운까지 건 약속이었고 실천만 남았다. 지금도 늦었다"고 김 의원의 주장에 힘을 보탰습니다. 
 
침묵하던 대선주자들도 나섰습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날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거꾸로 가는 선거제를 막아야 한다"며 이 대표를 저지했습니다. 그는 "선거제 개혁 논의가 후퇴하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에 나서게 됐다"고 했습니다. 신당 창당까지 시사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병립형은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극심하게 만들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특히 김동연 경기지사의 경우 '정치교체'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이 대표에게 날이 잔뜩 선 모습을 유지 중입니다. 
 
당내 개혁파들도 거들고 나섰습니다.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채택을 주장한 이탄희 의원은 자신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지역구(용인정) 출마를 포기하는 배수진을 쳤고, 김상희 의원은 민주당 소속 의원 75명과 공동으로 '위성정당 방지법(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기존 비명계와 달리 다수가 대오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게 됐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위성정당을 금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이 대표가 대선 후보 시절 '정치교체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 선언문을 발판으로 이 대표는 김동연 당시 새로운물결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의 충격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로 가까스로 봉합했던 이 대표가 또 한 번의 파고를 맞은 셈인데요. 이번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비명계 신당 창당에 명분을 제공하는 등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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