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핀마저 뽑혔다…한반도 무력충돌 화약고로
정부, '9·19 군사합의' 1조 3항 효력정지…"최소한의 방어적 조치"
9·19 효력 정지에 한반도 긴장감 고조…군사적 충돌 가능성↑
2023-11-22 16:35:05 2023-11-22 18:03:12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북한이 지난밤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면서 정부는 공언한 대로 2018년에 맺은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했습니다. 이미 9·19 합의가 유명무실하고 우리 측에 불리하다고 정부가 지적해 온 만큼 예고된 수순인데요. 하지만 남북 간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최후의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9·19 합의가 5년 만에 사실상 파기되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냉랭한 남북 관계가 더욱 경색될 전망입니다. 
 
대북 정찰·감시 즉각 재개…새해 핵실험 가능성
 
정부가 22일 신속한 조치를 단행함에 따라 남북이 지난 2018년 체결한 9·19 군사합의 가운데 제1조3항 비행금지구역 설정 부분은 곧바로 효력 정지에 들어갔고, 과거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MLD) 일대의 대북 정찰·감시활동이 복원됐습니다. 
 
정부가 효력 정지를 언급한 제1조3항은 2018년 11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조항입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고정익항공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동부지역은 40㎞, 서부지역은 20㎞를 적용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회전익항공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0㎞, 무인기는 동부지역에서 15㎞, 서부지역에서 10㎞로, 기구는 25㎞로 적용했습니다. 
 
허태근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와 국방부의 조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상응한 조치이고, 최소한의 방어적 조치"라며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기반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평양 공동선언의 군사당국 간 부속합의서인 9·19 합의는 남북 접경지역 일대에서의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MDL 인근 포 사격 및 훈련 금지 △남북 간 적대행위 중지를 규정했는데요. 더불어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방지하고자 육·해·공 완충구역도 설정했습니다. 일종의 안전판을 마련한 셈입니다.
 
하지만 합의 이후 5년이 지나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게 정부 판단입니다. 윤석열정부는 비무장지대 인근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일부 합의 내용이 한·미가 가진 군사 자산을 활용한 대북 정찰 역량을 저해한다고 비판해 왔는데요.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 측의 합의 위반 사례가 계속 보고되면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했습니다. 
 
문제는 접경지역에서의 도발 행위를 금지한 합의가 남북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안전핀'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일부 효력 정지이긴 하지만 9·19 합의의 핵심 중 하나인 데다, 북한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북한의 맞대응과 추가 상응조치가 예상되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의 무력도발이 군사정찰위성로 포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시험 발사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새해 핵실험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입니다.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을 막을 일말의 '최후 안전핀'마저 뽑히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긴장의 악순환이 우려됩니다. 
 
북한조선중앙통신이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에 성공했다고 보도한 22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커지는 군사적 충돌 가능성…야 "한반도 평화 희생"
 
이 같은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9·19 군사합의 조항 일부 효력 정지 결정을 두고 여야가 격돌했습니다. 민주당은 "잘못된 처방"이라며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고 한다. 강력히 규탄한다"면서도 "이번에 북한 전략무기동원에 대해 효과적 대처 방법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마치 새로운 안보 위기를 조장하고 정치적, 정략적 목표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전, 한반도 평화를 희생시키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 사태를 계기로 (윤석열정부에서) 첫 번째 나온 반응이 9·19 효력 정지인 것 같은데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홍익표 원내대표도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이유로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하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라며 "9·19 군사합의는 장거리 로켓 발사와는 별개로 남북 접경지역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더욱 유지·확대·발전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비판에 대해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지키는 데 야당이라고 해서 소홀히 한다는 것이야말로 기본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정부는 손 놓고 있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국민 불안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불가피한 조치라고 본다. 안보위기 상황에서 여야가 따로 없다는 시각 가지고 같이 마음을 모아줬으면 좋겠다"도 촉구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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