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첫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은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의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임명도 거부할 것으로 점쳐지는데요.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정책이든, 인사든 전방위적으로 거부권 행사가 빈번해지면서 '툭하면 거부권'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재안 제시한 당정…박차고 나간 간호사협회
국민의힘과 정부는 11일 국회에서 보건·의료단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의료 현안 민·당·정 간담회'를 개최하고 오는 13일 국회 본회의 표결이 예정된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앞서 정부·여당은 지난 9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 본회의 표결을 앞둔 간호법·의료법에 대한 중재안을 제시하기로 했는데요.
정치권 안팎에서 간호법·의료법에 대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본회의를 앞두고 정부·여당과 의료 단체가 먼저 머리를 맞대 야당과 접점을 모색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당정 중재안은 간호법 제정안의 명칭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으로 바꿔서 추진하고, 간호사 업무 관련 내용은 기존 의료법에 존치하자는 내용인데요. 의료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의사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범죄를 '모든 범죄'에서 '의료 관련 범죄, 성범죄, 강력 범죄'로 구체화하는 내용을 중재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간담회 뒤 가진 브리핑에서 "당정은 각자 입장만 고수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며 "이 안에 대해 의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등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간호사협회 측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간호사협회 측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며 간담회 도중 자리를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현재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본회의에서 수정 없이 처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법안이 아닌 여야가 그동안 상임위에서 합의해 처리한 것"이라며 "여야 대통령 후보가 약속했던 것인데, 법 성격을 축소한다거나 하는 것은 저희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우린 이미 충분히 절차를 거쳤고, 내용도 우려를 반영해 수용해 왔기 때문에 이젠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통해 복지위에서 올린 이 법안들을 처리할 일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현행 간호법·의료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윤 대통령은 '야당의 독주'를 명분으로 양곡관리법에 이어 거부권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앞서 윤 대통령은 여야 간 합의 없이 의석수로 강행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료현안 민·당·정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대출 정책위의장,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 (사진=연합뉴스)
'툭하면 거부권'…최민희 방통위원 임명도 거부
정책뿐만 아니라 인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검토가 엿보입니다. 현재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최민희 전 의원은 임명안이 통과된 지 10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대통령실이 최 위원을 임명하지 않고 있는데요.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간호법, 최 위원 임명까지 거부한다면 정국이 경색되는 것은 물론이고, 야당이 하는 일에는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인식이 더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럴 경우 대통령실의 정치적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자 국회 결정에 대한 최후의 방어 수단이지만, 지나치게 남발할 경우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이유에서 방통위 상임위원 추천위원회 간사를 맡은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삼권분립이라고 하는 헌정질서, 이 헌법정신을 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비판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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