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금융권 결단력이 석화 위기 타개 열쇠
2025-10-02 06:00:00 2025-10-02 06:00:00
반도체·자동차·건설 등 전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석유화학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석화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발 공급 과잉, 친환경 전환 압력까지 겹치며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금융당국이 석화업계에 "죽겠다는 하소연만 하지 말고 자구책을 내라"는 강도 높은 메시지를 던지며 구조조정 압박에 나선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석화산업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 금융권의 선제적 지원이 필수 불가결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자금 수혈이 '좀비기업'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은 딜레마에 놓였다. 
 
금융권의 결단력이 중요한 이유다. 우선 선별적 지원을 통해 사업 재편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는 유동성 공급을 이어가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는 엄격한 퇴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구조조정 촉진자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단순한 대출 연장에 그치지 않고, 채권단 공동 관리, 워크아웃, 사모펀드와의 협력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환에 따른 금융의 역할이 필요하다. 석화 기업들이 화학 중심 사업에서 배터리 소재, 친환경 화학, 수소·바이오 플라스틱 등 신성장 분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정책금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는 하소연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수익성이 없는 제품 라인 축소, 비핵심 자산 매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등의 선제적 사업 재편이 필수다. 
 
단순 벌크 생산 위주의 사업 모델은 한계에 봉착했다. 이런 점에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케미컬, 친환경 제품 개발 등 기술 혁신에 매진해야 함은 생존 그 자체와 직결돼 있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이 아닌 기술·품질 경쟁으로 승부할 수 있는 글로벌 파트너십 전략 역시 필요하다. 
 
일본도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석화산업의 만성적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인해, 일본 정부와 금융권은 기업 통합을 강력하게 유도했다. 그 결과 미쓰이화학, 미쓰비시케미컬, 스미토모화학 등 주요 기업들이 사업 일부를 통합·합병하면서 생산 설비를 대폭 줄였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일본 석화업계는 체질을 강화했다. 현재 일본 석화 기업들은 스페셜티 화학·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재편돼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구조조정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단순한 구호를 넘어 체계적인 산업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석화 위기는 단순히 버티기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금융권의 선별적 자금 지원, 기업의 결단력 있는 사업 재편, 정부의 체계적 산업정책이 제대로 맞물려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편 당사자의 고통 분담과 구조적 변화 대응이다. 정부와 금융권, 기업 모두가 냉정한 선택을 통해 새로운 성장 방식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압박은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산업 체질을 강화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더욱 암울할 수밖에 없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은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내놓은 기업을 엄선해야 한다. 정부는 미래산업으로의 전환 경로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작금의 석화산업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임유진 금융부 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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