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삼성생명 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이 삼성생명과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생명 출범 69년 만에 이뤄진 설계사 단체협약인 동시에 국내 민영 생명보험사 최초의 단체협약으로 업계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무노조 경영 철옹성 균열"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노동조합 설계사본부는 이날 사측인 삼성생명보험과 단체협약 체결식을 진행했습니다. 자리에는 이학섭 삼성생명노조 위원장과 삼성생명 노사상무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단체협약은 회사와 노조 간 단체교섭권과 노동쟁의 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권리에 대해 약정을 하는 것으로, 이날을 기점으로 삼성생명 설계사 노조는 사측에 활동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삼성생명 설계사 노조의 단체협약 세부 내용은 △설계사 영업 전상망에 노동조합 홈페이지 개설 △설계사들의 수수료 변경과 관련 조합 의견 수렴 및 협의 △조합활동 참여 간부에 교통비 지원 △조합의 간부 회의 시 지역단 연수실이나 회사의 교육시설 지원 △조합원의 고중을 성실 처리 등입니다.
단체협약에 대한 효력은 체결식 이후부터 발생되며, 노조는 향후 단체협약을 근거로 세부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나아가 설계사 노동환경 개선, 조합원 확대 등 영향력이 기대됩니다.
특히 삼성생명 사측의 입장 변화가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삼성생명은 정규직과 설계사로 구성된 노조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대립적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설계사가 정규직이 아닌 위촉계약직 형태의 특수고용직인 탓에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협상력이 떨어졌던 배경입니다.
설계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4대 사회보험료(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혜택도 없었을뿐더러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할 권한인 단결권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20년 12월30일 고용노동부가 최초로 설계사 노조의 설립신고증을 발급하고 나서야 한화생명 금융서비스 지부, 삼성화재 노동조합 등 다수 보험사 노조가 설립됐습니다.
하지만 삼성생명 설계사 노조는 지난해 3월부터 회사와 단체교섭을 시도해왔으나 사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았고 만남을 회피해왔다고 전해졌습니다.
삼성생명 설계사 노조는 관계자는 이번 단체협약 체결에 대해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을 주장했던 삼성그룹 내에서 특수고용직인 보험설계사들을 공식적인 노동조합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고무적인 성과"라고 평가했습니다.
이학섭 삼성생명노조 위원장은 "69년 동안 삼성생명의 설계사들은 실적 압박과 고충 등에 대해 제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공식적인 창구가 없었는데, 이번 단체협약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설계사들의 권익을 위해 회사와 대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노란봉투법·삼성화재 선례 영향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의 태도 변화를 두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영향이 컸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근로계약 당사자'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포함시켜 확대한 것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안입니다. 현업에 적용되면 현행 고용보험법 상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됐던 설계사도 노동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 등 개인사업자 형태로 분류돼 단체교섭 같은 쟁의행위에 대한 법적 권리가 없었던 설계사들에게 보험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서 설계사들에게도 법적인 단체협상 권리가 생겼으니까 이번 단체협약을 결정할 때도 이런 부분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또한 지난해 삼성화재 설계사 노조의 단체협약이 선례가 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문화 삼성화재 사장은 지난해 연초 취임한 지 나흘 만에 첫 공식 행보로 삼성화재 설계사 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양호한 노사 관계 의지를 보였습니다. 당해 5월엔 민영 손해보험사 최초로 삼성화재 설계사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해 향후 설계사 노조 단체협약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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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에서는 지지부진했던 설계사 노조의 단체협약이 활발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교섭권을 보장받음과 동시에 보험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두 보험 계열사 모두 설계사 노조와 단체협약을 이뤘다는 점에섭니다.
현재까지 출범한 설계사 노조 중에서 단체협약을 진행한 사례는 매우 드뭅니다. 지난해 5월 삼성화재 설계사 노조의 단체협약 성사 이외에는 전무합니다.
한화생명에서 분리된 법인보험대리점(GA)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2021년 설계사 노조를 설립한 이후 기초 협약만 체결한 상황이고, KB생명의 GA인 KB라이프파트너스는 단체협약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체국 FC(설계사) 노조가 지난해 4월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으나 공제조합으로 민간 보험사의 단체협약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복지나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것 같다"며 "(삼성에서) 첫 문을 열었으니 설계사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업계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생명 사옥 간판. (사진=삼성생명)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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