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이강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민주당 주도로 최근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후 첫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 갈등이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여당은 국가 재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옹호한 반면, 야당은 입법권을 무시하는 '독선적 국정운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도 여야는 거세게 충돌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야당은 거부권에 맞서 총력 대응을 예고하고 있는 만큼, 여야 대치는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양곡법 두고 고성 공방…"악법 변질" 대 "농심 거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이틀째 대정부질문은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직후인 만큼 관련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요. 여야 간 고성은 물론, 한 치의 양보 없는 설전이 오갔습니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오늘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농심도, 민심도, 야당도, 국회도 거부하고 마구 걷어차고 있는 것이다. 벚꽃이 이르게 피었지만 민생과 민심의 봄은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당 '쌀값 정상화 태스크포스(TF)' 팀장이기도 한 신정훈 의원은 "'검사 독재·국회 무시·농민 무시' 윤 정부의 안하무인격 폭정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폭락한 쌀값을 정상화해 달라는 절박한 농심을 짓밟고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입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넘어 국민의 삶과 쌀값 정상화에 대한 포기 선언"이라며 "정부의 거듭된 홍보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거부권 반대 여론이 55%를 넘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가 안 들리냐"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쌀은 5000만 국민에게 하루도 없으면 안 되는 주식이고, 농가 52% 종사자의 주 소득원이다. 산업화 과정에선 늘 저임금 정책, 수출시장 대책을 위한 희생양이었다"며 "희생은 고스란히 지방소멸로 이어지고 있고, 세계 8번째 경제대국 되기까지 희생과 헌신을 다해온 선진국에 걸맞은 정부 도리를 다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농업환경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고, 수요도 급감하고 있다"며 "여기에 맞는 정책을 해야 할 때가 왔고, 가격을 지지하는 정책으로는 농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정부는 걱정한다"고 맞받아쳤습니다.
그러자 신 의원은 "지금 총리 말은 양곡법의 일면만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꼬집으며 "사전 생산 조정을 전제로 해서 양곡관리를 하자는 게 양곡관리법의 기본 취지다. 시장 격리는 사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비상조치로 예비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총리는) 자기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계속 들으려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 총리는 "대한민국 정부가 필요에 따라서 시장 격리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강제적으로 매년 시장 격리를 해야 할 상황은 농민에게 좋은 정책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하며 "의원님께서 듣고 싶은 답변만 들으시려고 하는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양곡관리법이 처음에는 어려운 농가를 돕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됐겠지만, 악법 중의 악법으로 변질됐다"며 "야당이 밀어붙인 이 법을 이대로 시행하도록 했다면 쌀 과잉생산 구조는 더욱 고착화 되고 농업의 경쟁력은 급속도로 후퇴해 국가재정에도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옹호했습니다.
한 총리는 "책임 있는 정부라면 해야 하는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일부 취지를 잘못 이해하는 농민들은 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것(양곡관리법)은 정말 우리 농민을 위한 길이 아니다. 농민을 위하는 길은 다른 정책을 통해서 좀 더 효율적이고 진정으로 도움 되는 정책을 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입법권 무력화에…강대강 대치 불가피
윤 대통령은 앞서 오전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여야는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내놨습니다.
우선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거대 야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제동을 거는 합법적인 권한 행사라는 점을 부각했는데요.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당은 이미 수차례 걸쳐서 양곡관리법이 우리 농업 전반과 국가 재정에 미칠 악영향과 민주당의 일방적 강행처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3일 엑스포 실사단이 국회를 방문하기 직전에 국회에서 삭발투쟁 같은 극한 투쟁을 해야 했는지 어처구니없고 부끄럽기까지 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국회 입법권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면서 거세게 반발, 총력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전체 농민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의 극치도 모자라 거부권 행사를 반대해온 국민한테도 반기를 든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이번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장외 투쟁을 진행하는 동시에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책임을 추궁할 예정이어서 여야 간 강대강 대치는 이어질 전망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신정훈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이강원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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