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에 이어,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의약품에 대한 관세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향한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타코'(항상 겁먹고 물러서는 트럼프)란 조롱을 의식한 듯, 이번 상호관세 부과 시한은 절대 변경되지 않을 거라 못 박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관세 서한 하루 만에 속도전…성장률 약탈 '시동'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 내각회의에서 의약품, 구리, 반도체 등의 품목에 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습니다. 일찌감치 이들 품목에 대한 관세부과는 예고돼 있었지만, 한국·일본 등 14개국에 '관세 서한'을 보낸 지 하루 만에 나온 발표인데요. 미국 측이 내달 1일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의약품 관세로 200%를 거론하며 "최장 1년 반의 유예기간을 준 뒤 이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했는데요. 외국 제약사가 자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준다는 뜻입니다. 결국 상대국 일자리·성장률을 빼앗아 오는 '약탈 전략'입니다.
이어 전기차, 군수 장비, 전력망, 각종 소비재에 필수적인 금속인 구리의 미국 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수입산 구리에 대한 50%의 관세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반도체에 대한 관세도 예고했지만, 구체적 수치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구리 관세는 트럼프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발표하고 관련 포고문에 서명할 계획이며, 7월 말이나 8월1일에 발효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의약품·반도체의 경우엔 "이달 말까지 조사를 완료가 완료되고 세부 사항이 나올 것"이라며 "대통령이 결정하는 사안"이라고 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HBM4 12단 샘플'과 셀트리온의 '짐펜트라'. (사진=각 사)
제약업계 직격, 반도체도 영향권
반도체·의약품 관세율이 관건입니다. 한국의 대미 구리 수출은 미미한 수준이어서, 직접적 피해는 크지 않은데요. 한국의 1위 수출품목이자 대미 수출 비중이 7.5%(2024년 기준)를 차지하는 반도체의 경우에도, 사실상 한국산 반도체의 대체재가 없어 관세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반도체를 사용하는 미국 업체 비용 부담만 높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곽노성 동국대 명예교수는 "25% 정도의 상징적 수준의 관세 부과, 이를 통한 자국 투자 유도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업계는 이 경우 직간접 영향을 합쳐 매출이 최대 6%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모바일 기기를 생산하는 MX(모바일경험)사업부는 관세가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구조라 관세 영향권입니다.
반면 DDR5와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고부가 제품 수요는 인공지능(AI) 서버 수요 확산 등에 힘입어 비교적 견조하게 유지될 전망입니다.
곽 명예교수는 "트럼프 관세 부과의 기본 목적은 혁신의 원천인 반도체 등 IT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려는 것"이라면서도 "반도체는 기반 구조에서부터 원료 물질에 이르기까지, 생태계 자체가 얽혀 있어 구리·의약품처럼 고율 관세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통상당국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나 현지 조선 산업에 자본을 투자해 이익을 얻는 식으로 대처해, 국내 일자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문제는 제약업계입니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약 6343억2000만달러(2024년·921조원)로 세계 최대 규모로, 견고한 혁신 생태계까지 이루고 있습니다. 현지 시장의 경쟁력이 높을수록, 한국 등 수출국 기업은 관세 인상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한국에서 수입한 의약품 규모는 39억7000만달러(약 5조4500억원)에 달합니다.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인데, 200%에 달하는 고율 관세는 그 피해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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