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편하고 건강한 삶을 살자고 들어간 실버타운인데, 몇 달 지나니 오히려 힘들어지더라.”
올해 81세인 어머니 친구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몇 년 전 배우자를 떠나보낸 후 오랜 고민과 상담 끝에 전원형 실버타운에 입주했지만 1년 만에 퇴소를 결정하셨습니다. 이유는 바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였습니다.
노년의 ‘건강한 삶(Well-being)’ 에선 신체적 요소만큼이나 정신적 요소도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정서적 공감대가 있는 삶’은 필수적입니다. 젊은 시절에 비해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는 노년기엔 정서적 고립이 신체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실버 세대, 특히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골드 실버’ 들이 실버타운을 찾습니다. 실버타운에서 신체적·정서적 만족도가 높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신체적 편안함은 누릴 수 있을지언정, 정서적 만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버 세대들만 한 건물에 모여 사는 ‘삶의 형태’가 오히려 족쇄가 된 듯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높은 ‘월 생활비’ 부담
‘전원형’과 ‘도심형’으로 나뉘는 실버타운은 일반적으로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문자 그대로 ‘거주’를 위한 공간입니다. 단, 입주 자격은 대부분 만 60세부터 80세까지로 제한됩니다. 그래서 ‘실버타운’ 명칭이 붙은 것이죠. 여기서 ‘전원형’은 도심에서 벗어난 시골 지역에 위치한 형태, ‘도심형’은 도시 한가운데 오피스텔 빌딩 형태로 자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비용이 상당히 높습니다. 실버타운은 단순 거주 공간만 제공하는 게 아닌 주거 돌봄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가 결합된 형태이기에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보증금부터 ‘억’ 소리가 납니다. 지방의 경우 1억 원대 초반부터 시작하지만, 수도권 특히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경우 보증금이 10억원대까지 올라갑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전국 주요 실버타운 30곳 월 생활비 또한 적게는 100만원대에서 많게는 800만원 후반대까지 이른답니다. 이는 순수 월 거주 생활비이며, 관리비 등은 별도로 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작년 11월 KB금융그룹이 발간한 ‘2024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315만원, 이 가운데 생활비는 40%를 넘는 128만원이었습니다. 이 금액에는 저축, 여유 자금, 대출 상환 등이 포함돼 있는데요.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자가 주택을 보유한 채 국민연금을 주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중산층 실버 세대에게 실버타운은 ‘그림의 떡’인 셈입니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관계의 불편함’ 호소
그러나 실버타운의 진짜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불거지는 듯합니다. 바로, 정서적 유대를 느끼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오히려 ‘정서적 피로감’을 느껴 퇴소를 결정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단 겁니다.
현재 실버타운을 이용 중이거나 이미 퇴소한 분들 의견을 종합해 보면, ‘관계의 불편함’ 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힙니다. 작년 말 실버타운에서 퇴소한 어머니 친구분도 “싫은 사람을 아침부터 밤까지 1년 365일 마주쳐야 하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고 말했습니다.
실버타운에는 기본적으로 65세 이상 노년층이 생활합니다. 동년배끼리 함께 식사하고, 운동하고, 휴식하며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단 점이 처음엔 장점처럼 느껴지지만, 어디까지나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만약 정서적 공감대가 없는 이들과 폐쇄적 형태의 공간에서 24시간 함께 살아야 한다면, 그것만큼 큰 스트레스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 친구분이 1년 만에 실버타운을 퇴소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답니다. 어머니 친구분은 “한 동네에서 살다 보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은 사람도 있지 않나? 동네에선 싫은 사람 안 보면 그만이지만, 실버타운에선 어디서든 항상 마주쳐야 한단 점이 힘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지방 실버타운에서 근무했던 전직 요양원 간호조무사는 “연세가 드신 분들이 한 공간에서 규칙을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는 생활을 한단 건 사실 이상적 얘기”라며 “직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입주 노인분들 트러블 중재”라고 말했습니다.
맹성규 민주당 의원은 '은퇴자 마을 조성 특별법안'을 통해 “다양한 취미 활동을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면 실버세대의 정서적 괴리감과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맹성규 의원실.
해법은 ‘은퇴자 마을’
이에 실버타운 장점을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은퇴자 마을’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22대 국회에서 ‘은퇴자 마을(도시)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맹성규 민주당 의원(국토교통위원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자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으로 ‘은퇴자 마을’을 제안했습니다.
실버타운이 특정 공간만을 사용하는 폐쇄적 구조라면, 은퇴자 마을은 마을 전체를 생활 공간으로 삼는 확장형 구조입니다. 기존 마을과의 차이점은 노년 세대를 위한 복지, 서비스, 일자리, 공동체가 밀집되어 있는 점입니다.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오는 정서적 피로감을 줄일 수 있으며, 반대로 공동체 안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정서적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국내 노인복지주택은 대부분 유료 실버타운 형태로 운영됩니다. 그러나 ‘은퇴자 마을 특별법’은 중산층 포함 다양한 계층의 실버 세대가 마을 안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맹 의원은 뉴스토마토에 “다양한 취미 활동을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면 정서적 괴리감과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다”며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체계적 노인 주거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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