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대성 기자] 한국거래소가 야심 차게 도입한 '밸류업 지수'에 대한 반응이 시원찮습니다. 실질적으로 밸류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보여주기식 정책보다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릅니다. 주주권 행사에 매우 적극적인 행동주의 펀드를 키워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적극적 주주행동 필요"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계 내에서는 기관들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주문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사모펀드는 물론 공모펀드 운용사도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한국거래소의 밸류업 지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관심이 기관 의결권으로 옮겨간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기업가치 개선을 위해 운용 규모가 압도적인 국민연금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기업이 주주이익을 훼손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대응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실질적인 밸류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2015년 당시 삼성물산의 이익을 훼손하는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에 찬성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뒷감당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최근에는 자신들이 찬성한 합병에 대해 주주 이익을 훼손했다며 삼성물산에 소송을 제기해 또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그땐 찬성해 놓고 이제 와서 주주 이익을 보호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황을 두고 비판이 따랐습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스튜어드십코드가 밸류업과 맞물려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에 동참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코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스튜어드십코드에 참여한 기관은 국민연금공단과 공무원연금공단, 사학연금 등 총 280여곳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관들은 소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일반 주주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처지입니다.
사모펀드 개입도 밸류업에 긍정적
사모펀드의 경영권 개입이 기업가치 상승에 긍정적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모펀드의 활동이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사건은 상장기업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큰 화두를 던진 것"이라며 "주주와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업들이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업들이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모펀드는 단순한 자금 조달처가 아니라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입니다.
김수민 UCK파트너스 대표는 "사모펀드와 기업, 오너일가의 성향에 따라 사모펀드와 기업은 충돌할 수도 있고, 함께 손잡을 수도 있다"며 "협업과 시너지를 통한 가치 창출이 분쟁·충돌에서 빚어진 가치보다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사모펀드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도 기업 가치를 높이는 강력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진행 중인
고려아연(010130)의 경영권 분쟁이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됐습니다. 고려아연 주가는 올해 들어 60% 상승했으며, 저평가됐던 주식이 단번에 주당순자산비율(PBR) 1.7배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이에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M&A가 기업의 잠재력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기업의 경영에 직접 개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기 때문입니다.
미일 밸류업 성공 배경엔 행동주의펀드
국민연금이 행동주의펀드에 자금을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습니다. 미국과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행동주의펀드 활성화를 위해 국민연금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행동주의펀드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주주 행동주의를 장려하면서 기업의 거버넌스와 자본구조 개선을 촉진했습니다. 그 결과 니케이지수는 30여년 만에 사상 최고점을 찍었고, 기업들의 배당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 정책, 지배구조 개혁, 도쿄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등을 꾸준히 추진했다"면서 "특히 10년 전부터 스튜어드십코드와 거버넌스코드를 도입하고 개정했으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거래소 상장 유지 조건을 강화한 점도 높게 평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우찬 교수는 "도쿄거래소의 '네임 앤 쉐임'(Name and Shame, 명단 공개) 전략 뿐 아니라 수많은 행동주의펀드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밸류업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더 많은 행동주의펀드가 등장하고 운용 규모가 커져야 의미있는 밸류업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계획 등 경영권 방어 방안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0.02.(사진=뉴시스)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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