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마저 정치화…이태원특별법 '거부권' 수순
정부, 이르면 30일 국무회의 열고 이태원특별법 상정·의결
민주 "유가족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거부권 땐 국민적 저항"
정부 "유가족에 추가 배상·추모공간 설치 검토"…반발 거셀 듯
2024-01-29 17:12:56 2024-01-29 18:06:32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무회의에 '상정·의결'된 직후 지체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인데요. 정치권 안팎에선 159명의 젊은 생명을 앗아간 참사마저 '정치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9번째 거부권 수순에 들어가면서 여야 대치 정국은 한층 얼어붙을 전망입니다. 
 
'총선용 악법'으로 규정하더니끝내 '유족 외면'
 
2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과 정부는 별도의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하는 데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30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정기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입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의결되면, 윤 대통령은 이를 즉각 재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재의결 절차를 거치는데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종교인들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대통령실 방향으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해달라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요구에 따라 김진표 국회의장이 해를 넘기면서까지 중재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끝내 입장을 바꾸지 않았는데요. 민주당이 '특검(특별검사) 조항 삭제'와 '총선 이후 시행' 등 김 의장의 중재안을 일부 수용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음에도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결국 지난 9일 야당 단독으로 통과됐습니다. 
 
대통령실은 즉각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처리 직후 "여야 합의 없이 또 다시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거부권을 시사했습니다. 국회 본회의를 넘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19일 법제처로 이송됐고,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 결정 시한은 다음 달 3일입니다. 
 
민주당 이태원참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맡고 있는 남인순 의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재의결 시점은) 원내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며 "거부권 행사 시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대응해 나갈 지 수위를 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쌍특검법과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재의결 역시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대통령이길 포기한 대통령"…더 커지는 정권심판론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 이후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 등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별도 지원책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추가 보상을 하거나 피해자 단체가 원하는 추모 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방식으로 유가족을 위로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유족 지원과 재발 방지에 중점을 둔 좋은 법을 다시 제안하겠다"며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췄는데요. 그는 "필요하다면 (유가족과의) 만남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민주당 이태원참사특별위원회 의원들이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결부된 일을 정치의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탄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는데요. 그는 "민심을 거역하며 또다시 거부권을 남용한다면 국민은 더 이상 분노와 좌절에만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법안 통과 이후 대통령실을 향해 줄곧 법안 수용을 촉구해 온 민주당 이태원참사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에 따른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정부·여당이 유가족들에게 별도의 배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김교흥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박주민 의원 역시 "윤 대통령은 본인이 겪은 일 중 가장 슨픈 일이 이태원 참사라고 했다"며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려면 거부권 대신 공포를 해주길 강력히 주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대통령이길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심판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밀리면 끝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는데요. 
 
그러면서 "지금으로서는 김건희 특검은 거부하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받아들이면 국민들은 '급하니깐 들어줬구나'라고 생각할 여지가 더 크다"며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판단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의 판단은 훨씬 더 하수"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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