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정일체론'이 핵심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당정의 분리와 일체에 대한 논란은 해묵은 논쟁거리인데요. 최근 일련의 당정일체 주장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세력이 김기현 당대표 후보의 '안철수 후보 당선 시 대통령 탄핵 우려' 발언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습니다.
'당권 장악'에 눈이 먼 윤핵관들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당정분리를 스스로 짓밟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선 당시 당정 분리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윤핵관 리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당정일체론'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윤핵관과 친윤(친윤석열)계가 김 후보의 '탄핵 발언'을 해명하려다가 해묵은 논쟁만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당정일체가 자칫 과거 권위주의 시절, 사실상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였던 시절로 회귀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친윤이 띄운 '당정일체론'…제왕적 총재로 회귀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주류인 친윤계는 연일 '당정일체론'을 띄우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과 정부가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를 위한 방안으로 윤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 추대론'까지 회자되고 있는데요.
최근 당정일체 주장은 장 의원이 김 후보의 '대통령 탄핵' 발언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습니다. 장 의원은 지난 13일 김 후보 발언에 대해 "당정이 하나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발언"이라며 "당정분리를 처음 도입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정분리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는데요. 이어 "미국 같은 경우는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며 해외 사례까지 거론했습니다.
이후 친윤계를 비롯해 친윤을 표방하는 전당대회 후보들이 이를 거들었는데요. 정미경 최고위원 후보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당정일체가 안 되면 일단 집안 내부 분열이 너무 심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김행 비대위원도 BBS 라디오에서 "당과 정부가 어떻게 완벽하게 분리가 될 수 있겠나"라며 "당과 정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습니다.
친윤계 핵심인 이철규 의원 역시 친윤계 공부 모임인 '국민공감' 세미나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명예 대표론'에 대해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는데요. 이 의원은 "대선 때 대선 후보와 당대표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당정분리론이 나왔던 것"이라며 "집권 여당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집권당이라고 말할 수 있나"라고 덧붙였습니다.
당 지도부는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 주장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당정 협력을 강조했는데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직에 대해 "논의해 본 적은 없다.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도 "집권 여당과 대통령실이 분리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없다. 늘 같은 책임을 지고 같은 배에 탄 일원"이라며 힘을 실어줬습니다.
다만 주호영 원내대표는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당원의 뜻을 모아 결정할 일이다. 개별적인 의견을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며 "당정 관계가 긴장 관계만 유지해선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너무 일치되면 건강한 비판이 없어질 수 있다. 중도가 필요하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대통령 명예대표 추대론…여당 '당헌 7조' 위배
비윤(비윤석열)계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이날 K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대해 여당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의견들도 나와줘야 되는 게 정상이다. 입법부의 역할은 행정부와 협력하는 것도 있지만 감시하고 견제하는 부분도 있다"며 "안 그러면 여당을 용산 출장소로 만들 건가"라고 비판했는데요. 김용태 최고위원 후보도 "당정일체를 외치는 분들의 속내는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총선 개입'"이라며 "권력에 아첨하고자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마저 팔아먹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정일체론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본격적으로 강조됐는데요. 이후 정치권에 당정분리가 부상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당선 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분리를 선언했는데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도 2006년 당권·대권 분리를 공식화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당정분리는 출발부터 삐거덕거렸는데요. 노 전 대통령도 2007년 "당정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재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책임정치에 입각한 국정수행을 위해 당정일체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당정일체론이 자칫 과거 권위주의 시절 횡행했던 수직적 당정관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큰데요.
당장 국민의힘 당헌에서부터 당정분리 원칙에 위배됩니다. 당헌 제7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해 여당이 대통령에게 종속될 가능성을 차단했는데요. 제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당정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하여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결국 당헌은 당정이 긴밀하게 협조하되, 한쪽에 종속되면 안된다는 걸 명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친윤계가 제기하는 당정일체론은 당헌 7조, 8조가 지향하는 '건강한 당정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도 당정일체론이 제왕적 총재 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하며 시대를 역행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편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4인은 이날 첫 TV 토론회를 열었는데요. 토론회에서는 최근 불거진 탄핵 발언과 당정일체 논란 등을 두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습니다.
다음 토론회는 오는 20일 MBN에서 오후 5시25분부터 진행되며, 이어 KBS(22일 오후 10시50분), 채널A(3월3일 오후 5시20분)에서 각각 생방송 됩니다. 최고위원 및 청년최고위원 후보 방송 토론회는 이달 27일 오후 2시부터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서 중계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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