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보고서 의결에 앞서 퇴장한 여당 위원들에게 항의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정부의 부재로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을 잃게 한 무책임한 행위에 대해 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놀러 가서 죽었다고? 우리 청년들은 놀면 안 되나요. 놀러 오라면서, 축제라면서 홍보하지 않았습니까. 어른이란 사람들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모든 걸 덮어씌웁니까."
"저는 생존자로서 심리상담도 자발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성댓글이나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를 힘들게 하지는 않습니다. 저에게 2차 가해는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었습니다. 참사 후 행정안전부 장관의 첫 브리핑을 보며 처음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의 2차 공청회에 참석한 유가족 및 생존자의 진술입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 난 마음은 치유되지 않고 있는데요. 55일간의 국조특위 활동은 명확한 진상 규명 없이 끝났습니다. 그저 정부와 정치권 등이 보여준 혐오와 분열, 책임회피만이 귓가에 맴돌고 유가족의 울분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진상규명 못한 반쪽 특위…마지막 날 쓰러진 '유가족대표'
19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회 국조특위는 지난 17일 야 3당 의결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을 명시한 국정조사 보고서를 채택하며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총 55일의 활동 기간도, 결과 보고서 채택도 모두 '반쪽'이 된 국정조사에 유가족은 실망을 금치 못했는데요.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활동 종료 날, 여당 의원들을 규탄하며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국조특위는 시작부터 파행하며 삐거덕거렸습니다. 국정조사에 여야가 합의한 직후 야당이 이 장관의 파면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 요구한 이유가 컸는데요. 여당은 야당이 합의 정신을 깼다며 한때 국정조사를 보이콧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예산안 처리로 여야 신경전이 극에 달하면서 특위는 한 달간 '개점휴업' 하기도 했는데요. 158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그날'의 참사를 밝혀달라는 국민들의 요구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네 탓, 내 탓'만 하며 수수방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10월29일 토요일 밤에 발생한 '그날'의 참사는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맞는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 거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는데요. 급작스러운 인파에 한 호텔 옆 좁은 골목길에서 158명이 숨지는 압사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토요일 늦은 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대규모 인명 참사는 국민 모두의 눈과 귀를 의심할 만큼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긴급 위기 상황에서 톱니가 맞물리듯 빈틈없이 돌아가야 할 국가 시스템은 총체적 부실을 드러내며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는데요.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기관의 허점은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누구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기관인데 말이죠.
국가 시스템 '총체적 부실'…참사 진상규명 '저 멀리'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사 원인을 규명해 재발 방지책을 세우고 유족을 위로하는 대신, 정쟁만을 앞세우며 이번에도 갈라졌습니다. 비극 앞에서 이럴 때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달라고 국민들이 금배지를 달아줬는데 말이죠.
여야는 희생자의 실명 공개, 국정조사, 이 장관의 거치 등을 두고 충돌했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양측이 합의했지만, 야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통과시키고 여당 특위 위원들이 이에 반발해 전원 사퇴하면서 공전을 거듭하는 등 비판 받을 일만 줄곧 했습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도 원색적으로 드러났는데요. 참혹한 현장을 휴대폰으로 생중계한 유튜버가 등장했는가 하면, 온라인에서는 혐오성 발언 등이 퍼지며 유족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거듭되는 2차 가해는 유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는데요. 불통·불신이 가득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난 석 달여 시간 동안 남은 것은 유족들의 슬픔과 울분뿐이었습니다. 책임을 자임하는 대신 전가만 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 사회 곳곳의 비판 목소리가 높은데요. 우리나라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봉사자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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