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삼성생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뉴스토마토)
'삼성 저격수'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돌아왔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사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에 이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을 겨냥했다. 보험가입자의 돈으로 총수일가 지배력을 강화하는 '불공정 행태'를 끊어내겠다는 취지다.
삼성생명은 현재 그룹 핵심사인 삼성전자 지분 8.51%(5억815만주·올해 3분기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중요한 고리다. 문제는 삼성생명의 과도한 삼성전자 주식 보유 규모다. 15일 종가 기준으로 삼성전자 1주당 가치는 5만9300원이다. 이는 삼성생명 총자산(약 314조)의 10%에 달한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 3% 이내로만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예외'다. 보험업감독규정상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한 198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가치는 5444억원에 불과하다. 삼성생명 총자산의 3%(약 9조원)에 크게 못 미치는 셈이다. 금융업계에서 취득원가로 평가받는 건 보험업뿐이다. 삼성생명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 의원은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2020년 6월 발의했다. 보험사의 자산 평가방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박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현행 보험업법에 대해 "마지막 구시대의 유물"라며 "이 회장이 이병철·이건희 시대에 이뤄졌던 특권과 반칙을 종결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갈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가 폭락 공포론, 해외투기세력 장악론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삼성생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뉴스토마토)
-삼성생명법의 두 축은 '시가'로 하는 총자산의 가치 기준 정립과 보험업법이 정한 비율 이상의 타 회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다. 이것이 2022년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벌 대기업 집단인 삼성의 새로운 시대를 위해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박용진과 삼성 총수 일가의 악연이 있다. 첫째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차명계좌 세금 징수 사건, 둘째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내부문건 폭로 사건, 셋째는 삼성생명법 발의다. 모두 이병철·이건희 시대에 이뤄졌던 '불법·반칙·특혜'다. (이재용 회장은) 선대가 만든 불법·반칙·특혜의 시대를 종결하고 새 시대로 나갈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현행 보험업법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마지막 남은 구시대 유물'이라고 해석해도 되나.
그렇다. 이재용 회장이 구시대 유물을 청산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라는 게 박용진의 권고다.
-내년부터 보험부채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새로운 보험 국제회계기준 'IFRS17'이 도입된다. 이젠 상식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에 봉착한 게 아닌가.
IFRS17에 맞춰 부채 관련 인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통일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이미 국회 논의가 시작된 만큼 결론 없이 묻을 순 없을 거다. 국회가 삼성의 철벽 수비를 뚫었다. 국회가 달라졌다.
-국회가 변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지지부진했던 삼성생명법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결정적 동력은 무엇인가.
역사는 자기중심으로 쓰지 않나. 21대 국회 후반기에 들어오면서 어느 상임위에 갈지 고민이 있었다. 정무위에서 이룰 만큼 이뤘으니…. 하지만 걸리더라. 삼성의 지배구조에서 마지막 단계를 풀어주고, 시장의 원칙과 상식을 살리고,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개미투자자들에게 돈도 벌게 해주고. 그래서 정무위에 남겠다, 이 법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700만 삼성 주주 지킴이법!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생명법을 저지하려는 '삼성의 로비'는 없었나.
저한테는 안 오지만 삼성 측에서 다른 의원들을 찾아가거나 언론을 통해 기사를 써달라고 한다고 들었다. 삼성이 새로움을 보이지 못하고 예전 방식대로 하려는구나 생각이 들어 실망스러웠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법을 반대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 국내 생명보험사가 보유한 주식의 86.3%를 차지한다. 그만큼 삼성생명의 주식 투자가 과도하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에 위험이 생기면 삼성생명으로 퍼진다. 그렇다면 왜 삼성생명의 부실과 실적하락을 방치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실적하락과 경제위험은 시가로 오지 취득원가로 안 온다. 결국 취득원가를 쥐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갖기 위한 것이다. 그것도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 고객 돈으로 자신의 지배력은 강화하면서 고객은 이익을 못 보게 하는, 이런 불공정하고 나쁜 게 어딨나.
-은행과 증권사 등 모든 금융사의 자산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가로 평가하는데 유독 보험사만 취득원가로 평가한다. 반칙과 꼼수의 역사가 태동한 원인은 무엇인가.
특혜 봐주기가 있었다고 추측한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권고(보유지분 평가방식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에 따르면 큰일이 나는 거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한 건 1980년대인데 시가로 계산하면 지배구조에 위험이 온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삼성이 필사적으로 막았을 것이다. 그래서 관료들이 일정하게 길을 열고 아무도 모르게 법 취지를, 시행령도 아닌 장관 고시인 감독규정으로 뒤트는 일을 벌였다고 본다. 이건희 전 회장 차명계좌 사건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가 금융실명법을 마음대로 해석해 차명계좌는 비실명자산이 아니라고 해괴한 해석을 내놨다.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어떤 변화가 있나.
별문제 없다. 삼성그룹 지배력의 핵심은 삼성전자 지분을 누가 더 많이 가지고 있냐는 것이다. 이재용 일가와 공익재단,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20.03% 정도 된다. 여기서 5% 거둬내자는 것이다. 그래도 15%면 넘사벽이다. 지분 1% 이상 갖는 존재는 특수관계인들이다. 삼성이 외국 기업에 팔려 간다? 그런 걱정은 안 하는 게 맞다. 엘리엇이 배당 높이라고 요구했을 때 지분이 0.6%였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이미 50%를 넘는다. 우리 법엔 전략 산업을 보호하고 안보 관련 외국인의 주식지분 취득을 제한하는 내용이 있다. 금호타이어가 중국 기업 더블스타에 매각될 당시 항공기 타이어 만드는 부분 관련 국회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보수 경제학자 중심으로 법 통과 이후 엘리엇과 같은 해외 투기세력이 삼성전자를 장악할 거란 주장이 나오는 건 사실이다.
외계인이 쳐들어올까 봐 겁나서 대책을 세우자는 사람들에게 무슨 반박을 하겠나. 한심하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삼성생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뉴스토마토)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이 대거 시장에 풀려 삼성전자 주가가 폭락한다는 공포론도 끊이지 않는다.
사례로 보자. 삼성생명법이 논의될 때마다 삼성생명 주가가 오른다. 시장의 합리적 판단이다. 우리에게 배당이 오고 현금 이익이 실현되겠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삼성전자가 2017년 자사주를 49조 가까이 매입해 소각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 주식이 엄청 올랐다. 이번에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을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법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주들, 삼성생명 유배당 보험계약자들 700만 명에게 돈 벌어주는 법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한 것은 40년 전 일이다. 삼성생명법을 통한 강제매각이 일종의 소급적용, 즉 위법이란 지적도 있는데.
양심도 없는 소리다. 보험사가 고객의 돈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경제위기의 슈퍼전파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험업법이 만들어졌다. 40년 전이라도 과거의 일이 오늘의 위기상황으로 올 것 같으면 당장 대처하는 게 정치가 할 일이다.
-그간 여의도에도 '삼성 장학생'이 많다는 의혹이 있었다. 민주당 내에도 있지 않나.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나중에 정치 관두고 회고록 쓸 때 실명으로 말하겠다. 어쨌든 국회에 로비는 당연히 있다. 이해관계집단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노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는 세력들이 로비를 더 잘하는 만큼 국회의원들은 균형 감각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상식과 원칙을 뛰어넘는 특혜와 로비 관련 로비는 봄눈과 같아서 국민 상식과 눈높이란 햇살을 받으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제가 자꾸 언론과 인터뷰하는 건 국민 상식과 눈높이라는 햇살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삼성 저격수'란 수식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나. 애로사항도 있을 거 같은데.
원칙과 상식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최고 권력 집단인 삼성과 맞서는 일을 두려워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이 소신 있는 정치를 평가해준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다만 저는 삼성을 저격한 적이 없다. 삼성이란 훌륭한 기업을 장악하기 위해 불법, 반칙, 특혜 위에 군림하려는 총수 일가의 잘못된 일을 비판해왔다. 저 때문에 삼성이 손해 본 적은 없다. 삼성은 오히려 저 때문에 정도경영의 길을 걷게 됐다. 저는 삼성이 지금보다 더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저처럼 삼성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대담=최신형 선임기자·정리=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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