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일정에 MBC 측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 윤석열정부의 '언론 길들이기'가 날로 노골화하는 모양새다. 지난 9월 MBC의 윤 대통령 비속어 파문 첫 보도에 대해 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다음부터 여권의 'MBC 때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YTN 민영화·KBS 감사 등도 이어져 정부가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권력을 악용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대통령실은 9일 오후 9시7분 MBC 출입기자에게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한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된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이어 "MBC는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대역임을 고지하지 않은 왜곡, 편파 방송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어떠한 시정조치도 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이에 MBC는 "언론의 취재를 명백히 제약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10일 'MBC 탑승 배제'에 공동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해외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에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서는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이고 그렇게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당도 이에 보조를 맞췄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비대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언론통제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김대중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청와대 출입을 금지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기자실에 대못질 한 사례도 있다. 이게 언론 통제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다.
MBC에 대한 정부의 불만은 MBC가 지난 9월22일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을 첫 보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MBC는 윤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비속어를 사용한 장면을 보도하며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안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붙였다. 국익을 위해 보도 자제를 요청했던 대통령실은 이내 공세로 입장을 바꿨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었고 '이 XX들' 대상도 미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라며 "짜깁기"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귀국 후 첫 출근길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서 동맹을 훼손한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MBC)
변화한 대통령실 기조에 국민의힘도 MBC를 향한 공세에 뛰어들었다. 보도 다음 날인 9월23일 오전까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다"(정진석 위원장), "전후 발언의 경위나 정확한 내용에 대해 정보가 없다"(주호영 원내대표)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던 국민의힘은 당 차원의 'MBC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TF'를 만들고 MBC항의방문 및 고발 조치를 이어 나갔다. 이에 국내 언론인뿐 아니라 국제기자연맹도 "언론을 협박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MBC 'PD수첩'이 지난 10월11일 김건희 여사의 대역 배우를 사용하면서 '재연'이란 자막을 내보내지 않아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MBC는 보도 준칙을 위반했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MBC는 해체돼야 한다"(김기현 의원)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여당 내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당의 언론 때리기는 계속됐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정진석 위워장은 지난 10월28일 "출범 5개월인 정부를 공영방송이 내려치나. MBC는 말할 것도 없다"며 언론 환경을 탓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원인으로 박성중 의원은 지난 4일 "4대 공영방송 KBS, MBC, YTN, 연합뉴스TV는 29일 밤까지 안전 보도 없이 핼러윈 홍보 방송을 했다"며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
대통령실의 이번 조처와 관련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취재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특정 언론사를 찍어서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건 그 언론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라며 "전용기를 마치 개인 비행기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세금으로 운용되는 전용기에 공영방송이 탑승해 취재하는 것을 마치 시혜를 베풀 듯하면 안 된다"고 짚었다. YTN 민영화 시도, KBS 감사 등 언론 길들이기의 대상은 MBC뿐만이 아니다. 박수영 의원은 지난 9월 MBC를 포함해 KBS, YTN 등을 거론하며 "말도 안 되는 방송 내보내는 공영방송을 일곱개씩이나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다음 목표를 겨냥했다.
전국언론노조·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는 이날 긴급 공동성명을 내고 "언론탄압이자 폭력이며, 헌법이 규정한 언론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대통령실의 이번 조치는 대통령의 해외순방 욕설 비속어 파문, 이태원에서 벌어진 비극적 참사에 대한 무책임한 대응 등 자신들의 무능과 실정이 만든 국정난맥상의 책임을 언론에 돌리기 위한 저열한 정치적 공격"이라며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정부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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