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조절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피벗(pivot·정책 전환)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한국은행 역시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연준의 긴축 기조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시장에서는 더 벌어진 한·미 금리차 등을 이유로 한은이 연속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3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미 연준은 2일(현지시간)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3.00~3.25%에서 3.75~4.00%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7·9월에 이어 사상 첫 4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으로, 기준금리 상단이 4%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 2008년 1월(4.25%) 이후 약 15년 만이다.
연준의 결정은 멈추지 않는 물가상승세에서 비롯됐다. 연준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인플레이션은 (감염병) 대유행, 더 높은 식품·에너지 가격, 광범위한 가격 압박과 관련한 수급 불균형을 반영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금리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연준의 이번 금리 인상 폭은 시장의 예상과 부합하다. 하지만 FOMC 직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금리 인상 속도를 줄일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르면 다음 (FOMC) 회의가 될 수도, 아니면 그 다음 회의가 될 수도 있다"며 속도조절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금리 인상 중단에 대해 생각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매우 시기상조다. 아직 중앙은행이 갈 길이 남았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최종 금리 수준은 지난번 예상한 것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내년 기준금리가 앞서 9월에 제시한 4.6%를 넘어 5%대까지 높아질 여지를 열어뒀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파월 연준 의장이 명시적으로 최종금리 수준이 지난번 예상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적어도 최종 금리 수준이 5% 이상이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내년 3월까지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하 연구원은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 속도조절을 시사하면서도 단순히 인상 속도조절이 통화 완화에 대한 선회로 해석되는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강한 얘기들을 많이 한 것 같다"며 "지난 7월 말 연준이 원론적으로 금리 인상에 대한 속도조절 가능성을 밝힌 바 있었는데, 그 당시 시장은 '속도조절이 곧 피벗이다', 즉 '통화 완화 기조로 선회다'라고 해석하면서 금융시장이 반등하고 여기에 수요가 재차 살아나면서 물가가 다시 올라가는 모습들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연준 입장에서는 '이런 기대감을 없애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의 통화 완화 선회 기대가 꺾이지 않으면서 이를 억제하기 위한 연준의 긴축도 추가되고 있다"며 "이러한 과정에서 경기 경착륙 가능성은 고조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예상 밖의 매파적 발언에 한국은행 역시 셈법이 복잡해졌다. 오는 24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폭을 두고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5%대 중후반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함께 미국의 강한 긴축 기조까지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수준의 금리 인상을 결정할 지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베이비스텝을 결정할 것이라는 견해와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베이비스텝의 경우 최근 무역적자 등 지표상 뚜렷해지는 경기 둔화와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 등을 이유로 제시한다. 특히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이 심화하자 금융안정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베이비스텝 전망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준의 네 번째 자이언트 스텝으로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0.75~1.00%p로 벌어지면서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24일 한은이 베이비스텝으로 대응시, 연말까지 한·미간 금리 격차는 최소 1.25%p에서 최대 1.50%p까지 벌어지는 데, 그럴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이 우려된다. 여기에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환율·물가 등도 빅스텝 전망 이유로 거론된다.
신지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 결정으로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진 가운데, 한은은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며 "올해 한 차례만 남은 금통위에서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편 국내 금융권에서는 이날 연준의 자이언트스텝 단행으로 연말 은행권의 가계 대출금리 상단이 10%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3분기 지급여력비율(RBC 비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재무건전성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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