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112 '압사' 신고도 묵살…드러난 진실, 예고된 인재
'압사' 위험에 '통제' 요청 있었지만 결국 '방치'…여, 경찰로 책임 화살 돌려
2022-11-02 16:12:41 2022-11-02 21:32:51
지난 1일 경찰청이 공개한 당시 112 신고 내용에 따르면, 사고가 있기 전인 오후 6시34분부터 오후 10시11분까지 총 11차례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들은 인파가 몰린 위험한 상황을 언급하며 경찰의 현장 통제를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신고자들이 총 9차례 '압사'란 단어를 언급했다. (그래픽=뉴시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10월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4시간여 전부터 112에 압사 위험을 예고하는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참사 발생 4분 전까지 모두 11차례의 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번 참사가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정부도 더 이상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경찰청 사건 개요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는 10시15분경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턴 호텔 옆 세계음식거리에서 핼러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운집한 인파가 한꺼번에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지난 1일 경찰청이 공개한 '이태원 사고 이전 112 신고 내역'에 따르면, 첫 신고 접수 시간은 오후 6시34분이었다. 신고자는 "압사 당할 것 같다"며 경찰의 통제를 요청했다. 장소도 "해밀턴 호텔 골목 이마트24"라고 특정했다. 참사 발생 4시간여 전부터 경고음이 울렸던 것이다.
 
두 번째 신고는 8시9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 난리가 났다. 단속 좀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8시33분 세 번째 신고자는 현장 영상을 보내겠다고도 했다. 이어 8시53분, 9시, 9시2분, 9시7분, 9시10분, 9시51분, 10시, 10시11분 등 총 11차례에 걸쳐 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다섯 명의 신고자가 "압사"라고 정확히 말했다. 이외에도 '대형 사고 일보 직전', '사람 죽을 것 같다', '아수라장' 등 위기를 알리는 표현은 충분했다. "일방통행 할 수 있게 통제해달라"는 구체적 요구도 전달됐다. 하지만 경찰은 11번의 신고 중 4번만 현장에 출동했을 뿐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공개한 신고 내역만 11건으로, 전수조사를 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전 대응에 손을 놓았던 경찰은 정권을 위해서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경찰청 정보국은 이태원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 주요 시민단체 동향을 파악해 '정책 참고자료'를 만들었다. 이번 참사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관저 문제와 연계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시민단체가 '정권퇴진운동'으로 사태를 끌고 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 중 한 명인 안철수 의원은 "정책 참고자료로 위장된 정치 문건"이라며 "(민간인)사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4월14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추모객이 철조망에 걸려있는 노란리본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감쳐졌던 진실이 하나둘 드러남에 따라 예고된 인재라는 사실도 명백해졌다. 경찰의 방치와 참사 직후 여론 동향에 주력한 점 등 이번 참사의 양태가 세월호 참사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가 크게 기울기 시작했고, 4분 뒤인 8시52분부터 세월호에서 소방방재청(119)과 해양경찰청(122)으로 걸려온 신고 전화는 모두 18통이었다. 9시23분 마지막 신고 때까지 해경은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해경 지휘부는 골든타임을 한참 놓친 9시45분 무렵부터야 본격적인 선내 진입 구조를 지시했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정원이 정부 책임론 확산을 막아야 한다며 유가족과 언론, 법원, 시민단체 등을 사찰하고, 내부 문건을 통해 민심과 여론을 관리할 방안을 자세히 적은 사실이 지난해 1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공개로 확인되기도 했다. 
 
정부 사과 역시 이태원 참사 사흘 만인 지난 1일에서야 나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윤희근 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이번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규정하며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사고 수습이 먼저라며 "지금은 추궁이 아닌 추모의 시간"이라고 정부를 편 들었다. 야권의 책임론을 정쟁으로 규정,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북한 미사일 발사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의힘은 경찰의 112 신고 내역 및 녹취록이 공개되자 일제히 화살을 경찰로 돌렸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비대위 회의에서 "4번이나 현장 출동했던 경찰의 현장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기동대 병력 충원 등 충분한 현장 조치가 왜 취해지지 않았는지 그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면서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며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 추진 등 제도적 미비로 참사 원인을 돌리다가 경찰 책임론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정부가 해경을 해체한 것과 비슷한 접근법이라는 지적이다. 정 위원장은 112 신고 녹취록 공개 배경으로 "대통령 지시에 인한 것"이라고 말해, 정부 차원에서 경찰로 책임을 몰아간다는 의심도 더해졌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을 방기하다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빌미를 제공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낮은 지지율에 국민들의 참사 트라우마까지 되살아날 경우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예상조차 어렵다. 미국의 WP(워싱턴포스트)는 '핼러윈 참사는 세계에서 가장 비호감 지도자에게 닥친 시험'이라는 기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위기를 언급했다. WP는 "희생자가 주로 젊은이인 악몽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며 "가뜩이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중도 우파 지도자가 정치적 화약고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게 됐다"고 진단했다. WP는 "윤 대통령은 핼러윈 재앙 이전에도 세계에서 가장 싫어하는 리더였고, 최근 모닝 컨설트(Morning Consult) 설문조사에서는 72%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며 "윤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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