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와 관련해 '통합진보당'을 언급하며 색깔론 공세를 이어갔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부터 시작된 구시대적 발언(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은 정 비대위원장을 거쳐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종북 주사파' 언급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권성동 의원 등이 가세하면서 윤심에 구애를 펼쳤다. 정 비대위원장과 권 의원 모두 당권 도전을 의식한 행보라는 게 당 안팎의 지배적 분석이다.
정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와 관련해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강제 해산된 통진당 세력이 촛불집회를 빙자해 중·고등학생까지 불러내서 내란 선동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집회의 주관 기관인 '촛불 중고생시민연대' 대표가 통합진보당 청소년 비대위원장 출신인 점을 문제 삼고, '집회에 참여하면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해 준다'는 가짜뉴스까지 거론하며 "헌정질서를 훼손하고 국가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세력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탄핵 선전전을 펼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힐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전교조 소속 현직 교사가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학생들에게 집회 참석을 종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가세했다.
이보다 앞서 권성동 의원이 통합진보당 배후론을 제기했다. 권 의원은 지난 사흘간 페이스북에 하루에 한 번씩 통합진보당을 거론하며 색깔론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을 겨냥해 "이석기 일당을 도와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이었다"며 "원전을 상대로 사보타주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고 했다. 22일엔 '촛불 중고생시민연대' 대표가 통합진보당 청소년 비대위원장 출신인 점을 언급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했던 이석기 일당의 후예가 여전히 거리에서 정권 퇴진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3일 오전엔 여성가족부의 보조금 사업을 수주한 '(사)노동희망' 대표가 통합진보당 출신인 점, 오후엔 또 다시 "어제 촛불집회는 통진당의 후예, 즉 이석기의 잔당들이 주도했다"고 폄훼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을 향해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색깔론의 시작은 과거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문수 위원장이었다. 그는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확실한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을 향해서도 "수령님께 충성한다"는 과거 발언을 그대로 이어가 국감이 파행되기도 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지난 16일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이 김문수 한 사람뿐인가"라며 김 위원장을 두둔했다. 18일에는 "민주당의 주류인 586 세력의 이념은 무엇인가. 왜 문재인 대통령은 5년 내내 욕설을 퍼부은 김정은 김여정 남매에게 고개 한 번 들지 못했나"라며 "민주당의 주류들은 요즈음도 북한은 항일무장 투쟁을 한 김일성이 만든 자주정권이고, 대한민국은 친일파 괴뢰정권이 세운 나라라는 생각을 언뜻언뜻 내비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의견을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라며, "적대적 반국가, 반헌법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하며 "종북 주사파가 누구냐"며 "협치의 최우선 대상은 제1야당 민주당인데, 설마 민주당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다음날인 20일 출근길에서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들이 잘 알 것"이라고 언급, 민주당을 겨냥한 발언을 거두지 않았다. 이는 결국 당 지도부 등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상황에서 안보로 이슈를 전환, 비속어 논란을 딛고 보수층 재결집을 위함으로 해석했다. 정진석, 권성동 의원 등 당권주자들이 무리하게 색깔론 공세를 펴는 것도 차기 전당대회를 의식해 '윤심'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다 황교안 전 대표도 차기 당대표 도전을 공식선언하며 탄핵을 부정하고 부정선거 주장을 되풀이하는 등 '도로한국당'이 됐다는 지적마저 더해졌다. 국민의힘을 젊은 개혁보수 정당 이미지로 탈바꿈시켰던 이준석 전 대표가 퇴장하면서 당이 다시 급격하게 우경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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