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대화 의향을 밝히면서 북·미 관계 변화 기류가 감지됩니다. 오는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북·미 정상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는 건데요. 동시에 '남·북·미 3자 회동' 성사는 외교 지평을 바꿀 최상 시나리오로 거론됩니다. 이재명정부의 실질적 외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인정 여부가 만남의 최대 걸림돌로 꼽힙니다. 확실한 조건과 카드 없이는 남·북·미 정상 간 회동이 성사되긴 어렵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APEC, 외교 지평 새 전기 '시험대'
29일 외교가에 따르면 다음 달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 등 전 세계 정상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질 전망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대화 성사 여부도 주목됩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의는 2018년, 2019년 두 차례 개최됐습니다. 2019년엔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한국을 방문,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조우했습니다.
현재 양국 정상 대화 개최에 대해 미국과 북한 모두 긍정적 반응을 내놨습니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은 유엔(UN)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는데요. 일각에선 양국 정상 대화를 위한 사전 조율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김 위원장도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좋은 추억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 당시 "올해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힌 뒤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에 대해 긍정적으로 화답한 겁니다. 김 위원장이 대외 메시지에 대화 가능성까지 내비친 것은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 이후 약 7년 만입니다.
다만 북한은 대화 조건으로 여전히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내걸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핵무기연구소를 찾아 "핵 무력에 의한 안전 보장은 절대 불변"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해당 발언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요구에 대해 국제사회의 반대 여론에 응수한 것으로 해석되는데요. 앞으로도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여론전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깜짝 회담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전문가들 "실질적 담보 없인 성사 어렵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도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대화 가능성에 불을 지폈습니다. 정부도 북·미 담판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 겁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현지에서 APEC 정상회의 계기 북한과 미국 정상 간 대화 재개될지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긴 곤란하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 대표부에서 이뤄진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북한과 미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난다면 환상적일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를 바란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정상회의 개최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판문점 회동'이 재연되는 일은 최상의 시나리오로 동북아시아 정세도 급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3국 정상의 만남을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와 외교적 진전까지 이뤄질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남·북·미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선 여러 조건이 필요합니다. 특히 북한 핵보유국 인정 여부가 대표적인 조건 중 하나입니다. 우리 정부는 위기 관리와 대화 재개의 방편을 위한 중단을, 미국은 비핵화를 위한 필수 단계로 완전한 중단이라는 속내가 깔려있습니다. 결국 남·북·미 정상 만남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조정하고 타협하느냐에 따라 개최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도 일제히 '조건'과 '목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정재환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배제하고 있지 않지만 레버리지(지렛대)를 쌓을 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당장 협상할 조건은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북한과 대화를 위해) 최종 목표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검토하고 북한과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북한으로선 비핵화가 목표가 아닌데 한국 입장에선 비핵화만 궁극적으로 목표로 삼으면 얻을 수 있는 게 크게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과거 좋았던 시절에도 김정은이 한국 방문은 없었고, 현재는 한국 정세도 복잡하며 정부 기조도 약간 우경화돼 있어 인센티브 마련이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명확한 담보 없이 대화 가능성을 거론하는 건 막연히 바라는 대로 이뤄진다는 생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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