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김지평 기자] 주요 정책펀드 운용권 상실로 위상이 흔들리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정책금융과 민간투자 사이에서 애매한 입지를 유지해온 가운데, 허성무 대표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향후 기관 방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성장금융을 이끌어온 허 대표가 오는 8월31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메리츠증권 상품본부장과 산은자산운용 부동산투자본부장을 거쳐 2019년부터 과학기술인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CIO)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2022년 9월 성장금융 대표직에 올랐습니다.
성장금융은 2016년 금융위원회 주도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됐습니다. 정책자금과 민간 출자를 결합해 모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중소·중견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성장사다리펀드'를 운용하며, 올해 7월 기준 500개 이상의 출자펀드를 통해 약 46조3000억원을 결성, 4060개 이상의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성장금융은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포스코 등 민간기업으로부터도 출자를 받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민간기업으로 공적 통제를 받지 않는데요. 출범 당시 최대주주가 성장금융 사모투자합자회사(PEF)였던 관계로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은 민간기업의 형태이지만 정책자금 성격의 모펀드를 운영하기 때문에 '반민반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성장금융 PEF(59.21%)가 청산되면서 그에 출자했던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이 각각 19.74%씩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습니다. 거래소가 예탁원의 최대주주인 구조상 거래소가 성장금융의 실질적인 최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책펀드 운용권 상실…좁아지는 입지
허성무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대표. (사진=뉴시스)
성장금융은 성장사다리펀드 출범 이후 모험자본 공급의 핵심 역할을 자처해왔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정부 들어 그 입지는 좁아졌습니다.
2023년 9월 금융위는 정책금융지원협의회에서 성장사다리펀드 개편안을 발표하며 성장금융의 운용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당시 금융위는 성장사다리펀드의 투자 대상 중 업력 3~10년의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든 기업 비중이 60%를 넘고, 첨단기술 등 고위험 분야에서는 시장 조성자로서의 역할이 미흡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에 고정된 운용 보수와 장기간 무경쟁 운영 구조도 활동 유인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도 더해졌습니다.
정책펀드 운용권 상실 사례도 잇따랐습니다. 2022년 말 4호 기업구조혁신펀드 운용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넘겼고, 올해 초에는 혁신성장펀드 재정모펀드 운용사 선정에서 성장금융이 탈락하고 신한자산운용과 우리자산운용이 선정됐습니다. 특히 해당 펀드는 성장금융이 기획 단계부터 관여했던 사업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이변이라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성장금융 출신 인력들이 우리자산운용으로 이직한 점과 산업은행·금융위와의 관계 변화가 작용했다는 해석도 제기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혁신성장펀드 등 산업은행이 재정 투자를 집행하는 펀드에서 성장금융이 민간 운용사와 경쟁해 탈락했는데, 최대주주가 거래소로 바뀌면서 산업은행과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면서 "이로 인해 내부에서도 동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관리·감독 사각지대 지적도
지난해 4월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기후기술펀드 조성 협약식에서 허성무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성장금융이 정책자금을 운용하면서도 민간기업으로 분류돼 정부의 직접적인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점은 오랜 논란거리입니다. 정책펀드를 운용하는 만큼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보다 엄격한 감시 체계 아래 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습니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성장금융은 정부 정책자금이 후순위로 투입되는 정책 모펀드를 취급해 리스크가 크지 않은 데다 실제 운용은 자펀드인 운용사에서 하므로 앉아서 돈을 버는 구조"라며 "수조원대의 정책자금을 운용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감독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성장금융은 자본시장법상 자산운용사로 분류돼 금융당국이 기본적인 건전성 관리 정도만 감독하는 실정입니다. 이 의원은 "비슷한 구조의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한국벤처투자는 법에 설립 근거를 마련하고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정부의 감독을 받고 있다"면서 "성장금융도 정부 감독 체계에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 기대와 엇박자로 정책펀드 선정서 고배"
일각에서는 허 대표의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허 대표는 과학기술공제회에서 CIO를 지낸 인물인데, 원래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벤처투자 분야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5월 성장금융이 발표한 지역활성화펀드는 비수도권 지역의 부동산 인프라에 투자하는 펀드인데요. 기업 중심 투자가 아닌 부동산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성장금융이 출자하는 펀드 중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허 대표가 과거 바이오산업단지 조성을 언급한 적도 있는데, 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가까운 사업이지 벤처투자와는 맞지 않는다"면서 "성장금융이 금융위가 기대하는 방향성과 어긋나고 산업은행과도 포인트가 잘 맞지 않아 정책펀드 선정에서 밀리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허 대표 후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다음 후임이 올 때까지 당분간 연장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 조직과 금융위가 개편 예정이라 차기 대표 인선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오승주·김지평 기자 sj.o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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