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핵보유론' 재부상
'조기 대선' 가능성 커지면서 논쟁 본격화
2025-03-10 17:00:34 2025-03-10 17:00:3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실태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북한 핵문제 대응 방안과 관련해 '잠재적 핵보유론'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4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북한 핵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많은 이들이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고 전제한 뒤 "한·미 확장억제에 의존한 한반도 비핵화만을 주장해 국민을 안심시키긴 어렵다"면서 "윤리적 측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북핵 문제로 지난 30여년간 고통받아 온 국민 눈으로 볼 때 너무 한가한 소리"라고 지적했습니다. "좀 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는 '자체 핵무장론'은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일축한 뒤 '차선의 대안'으로 "굳건한 한·미 동맹 바탕 위에서 확장억제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잠재적 핵 능력 보유를 추구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잠재적 핵 능력의 보유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가능하다"고 강조했는데요, 현재 한국은 2015년 개정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불가능하고 핵무기 전용이 불가능한 재활용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의 연구만 일부 허용돼 있으며, 우라늄 농축도 20% 미만 저농축만 가능(핵무기 제조는 90% 이상 농축)합니다.
 
반면 1988년에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한 일본은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상업용 플루토늄 추출과 20% 미만 우라늄농축은 가능하고 20% 이상 우라늄농축만 미국의 사전동의를 받게 돼 있어, 한국과 차이가 큽니다. 세계 유일 피폭국인 일본은 '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내세워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대해 온 겁니다. 결국 잠재적 핵능력 보유는 정책적으로는 한·미 원자력협정 내용을 미·일 협정 수준으로 올리자는 주장입니다.
 
"'정치적' 핵 잠재력 보유'정책적' 핵 평화적 이용"
 
국회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민주당 박지원·윤건영 국회의원)도 지난달 20일 이와 관련해 긴급토론회를 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핵 억제 옵션으로 △독자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핵잠재력 확보△확장억제와 한국군 비핵 억제(현재의 한·미의 억제태세) 등 4가지를 열거한 뒤, 향후 한국의 대외 메시지는 "한반도 비핵화가 바람직하다는 원칙론을 견지하는 가운데 한·미가 추진하고 있는 확장억제 심화와 한국군의 자강 노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핵 잠재력 또는 이에 준하는 표현을 신중히 선택하고 한·미 신뢰를 바탕으로 원자력협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 '표현' 문제와 관련, '핵 잠재력'은 NPT(핵확산방지조약) 준수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 가능성과 의도를 노출하는 효과가 있어 미국의 경계심 자극이 불가피하다며 핵무장을 직접적으로 암시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핵잠재력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방안으로 '평화적 핵주권'을 제안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다만 ‘평화적 핵주권’은 ‘핵 잠재력’에 비해 의미와 전달력이 약해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달래거나 핵무장론에 대응하기엔 부족할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적 표현으로는 핵 잠재력 보유, 정책적 표현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 최대화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전진호 광운대 교수, 2023년 5월 12일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일 원자력협정 비교 및 시사점’ 발표문 중. (그래픽=뉴스토마토)
 
 
김준형 "'핵 잠재력 보유' 논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더 어렵게 할 것"
 
이 자리에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자체핵무장 주장이나 핵잠재력 보유론 둘 다 안보 포퓰리즘 "이라고 반대하면서 "북한 핵은 미국의 핵우산과 한미의 재래식 전력으로 대응 가능하다, 미국은 민주당·공화당 정부를 막론하고 한국에 핵우산과 핵무장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아무리 부드럽게 말하고 표현을 달리해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핵무장 의심국가"라며 "핵의 평화적 이용 확대를 위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사안인데, 이렇게 '핵 잠재력 보유'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 협정 개정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미국의 동의 확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반대하면서 "북한 핵을 용인하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는데요. 그러면서 "북한 핵 동결-핵군축 협상"을 대안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종석 전 장관은 "NPT에 가입한 국가도 핵 잠재력을 보유할 수 있는데, 그 길은 산업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범위 확대"라며 "이런 정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자체 핵무장론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미국에 정교하게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일본은 1977년부터 재처리 시설 가동 협상에 들어가서 1988년에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했다"며 "우리가 지금 협상을 시작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보수 정치권 핵무장론 확산 뒤미국, 한국 '민감국가'로 분류"
 
이 논의와 관련 <한겨레>는 10일 "보수 정치권 핵무장론 확산 뒤 미국,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 기사에서 "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연구·개발 및 군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rty)로 분류해 규제하는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해 주목됩니다. 한국이 미국이 미국 정부에 의해 민감국가로 분류되된 것은 처음인데요. 기사는 원자력 분야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이 "미국은 한국의 약점을 다 파악하고 있고, 한국이 실제로 핵 무장이나 핵 잠재력을 향해 움직일 경우에 더 강하게 제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전했습니다.
 
'핵 잠재력'확보론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의힘 쪽에서 적극 나서왔습니다. 유용원 의원이 지난해 7월 '잠재적 핵 능력 확보를 위한 원자력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한동훈 전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도 같은 입장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박선원 의원이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은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된다는 터부에 갇혀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며 핵보유를 주장했습니다. 조기 대선에서 논쟁이 될 북한 핵문제 대응 과정에서 공간 확보를 위해 국민의힘에 버금가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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