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당시 대통령의 발언 중 특이했던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대통령 자신이 국회를 해산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참석자 중 누가 국회 해산에 대해 먼저 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는 1987년 개헌 이후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없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 101쪽)
지난해 12월 4일 오후,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다. 전날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발동했으나 국회가 곧바로 무산시켜버린 상황이었다.
한동훈은 차마 민망해서 묻지 못했겠지만,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은 실제 헌법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공소장과 윤석열 내란의 실행 책임자인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공소장에도 관련 대목들이 여럿 나온다. 그는 지난해 5월과 8월, 11월에 김용현,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과 B노총 관련자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재 사법체계 하에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비상조치권을 사용하여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헌법상 가지고 있는 비상조치권, 계엄 같은 이런 거를 이제는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헌법상 비상조치권, 비상대권을 써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
국가 비상사태에 대통령이 특별한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비상대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용어가 아니다. 과거 유신헌법과 5공 헌법의 비상조치권과 국회해산권 그리고 현행 헌법에도 있는 계엄선포권이 비상대권의 구체적 표현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로 그해 10월 6공화국 헌법으로 개헌하면서 비상조치권과 계엄선포권은 없애버렸고 계엄선포권 하나만 남은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대통령이 헌법상 가지고 있는 비상조치권' 운운하면서 비상계엄을 준비했고, 실패한 뒤에도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음에도 실행하지 않았다는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다.
'12·3 내란'이 무산되고 얼마 뒤 50대 후반 중견 변호사가 자기 또래 법조인들이 농담처럼 하는 대화라며 전해준 얘기다. '1991년에 사법시험을 합격한 윤석열이 한창 시험 공부를 했을 1980년대 중반까지는 헌법재판소도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시 과목 중에 헌법이 제일 쉬웠다, 그래서 사시 준비생 대부분이 처음에만 공부하고 나중에는 잘 열어보지도 않는데, 윤석열도 87년 개헌 이후 바뀐 헌법 내용을 몰랐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대놓고 헌법을 무시하는 행동을 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농담'으로 치부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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