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관세협상 여론 통일됐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오히려 다급한 건 트럼프
2025-04-24 13:54:25 2025-04-24 14:20:55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미 관세 협상을 위해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워싱턴 D.C.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호기롭게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다가 발효 13시간여 만에 '90일간 유예'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크게 두 가지 판단 착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90일간 관세 유예로 후퇴…트럼프 '두 가지' 판단 착오
 
우선 미국 국채가 폭락하면서 금리가 급등했다. 관세전쟁에 따른 증시 폭락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세계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로 자금이 몰린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힘겨운 재정적자 이자 부담에 치명적인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금융시장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2025 회계연도에 미국 연방정부가 내야 하는 이자만 9520억달러(약1356조원)에 달한다. 올해 국방 예산 8952억달러보다 562억달러나 많다. 게다가 트럼프는 고관세 부과의 가장 큰 이유로 '재정적자 해소'를 내세웠으나 역효과가 나면서 오히려 재정적자가 더 악화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는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은 예상했지만, 국채 폭락까지는 염두에 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전면 대응'이다. 트럼프 1기 때 미·중 무역전쟁은 물론이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무역 봉쇄를 겪으면서 중국은 대미 의존도를 줄여왔다. 이는 중국이 미국에 125% 보복 관세로 맞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또 애플과 테슬라 등 미국의 대표적 빅테크 기업들과 굉장히 깊게 얽혀 있다. 단적으로 미국 시총 1위 기업인 애플의 매출 절반을 차지하는 아이폰의 8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물론 최대 시장도 중국이다. 트럼프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의 수입관세 면제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70%, 정제·가공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은 이를 무기화했다. 사실상 중국에서만 정제되는 6개 중희토류 수출을 막았다. 전기모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자석의 핵심 재료들로 전투기와 전함, 미사일, 탱크, 레이저에 없어서는 안 된다. 또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격분하고 있는 유럽연합(EU), 동남아 등과도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는 관세 유예를 하면서도 중국에만 245%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지만, 중국은 완강하게 협상을 거부했다. 오히려 과거 한국전쟁 때 미국을 "종이 호랑이"라면서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가더라도 우리는 싸울 것이다. 완전 승리할 것이다"라는 마오쩌둥의 연설 영상까지 들고 나왔다.
 
결국 트럼프는 22일(현지시간) 대중 관세와 관련해 "145%는 매우 높은 수준인데, (협상 후에) 그렇게 높게 되지 않을 것이다"면서 "상당히 내려갈 것인데, 제로(0%)는 아닐 것"이라고 물러섰다. "중국은 우리를 속이고 있었고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면서도 "우리는 중국을 잘 대할 것이고 시진핑 국가주석과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선빵'을 날리는 공세적인 협상 스타일을 자랑하는 트럼프로서는 관세 유예 선언 이후 두 번째로 스타일을 구기면서 후퇴한 셈이다. 미국의 관세 협상 책임자인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같은 날 "미국의 목표는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협상 성과 내세우는 미국…이시바는 "성급히 결론 도출 아냐"
 
지난 2일 관세전쟁을 선포할 때와는 달리 오히려 트럼프가 다급한 상황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트럼프정부에서는 협상 결과가 아니라 협상 자체를 성과로 내세우는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22일 J.D. 밴스 부통령의 인도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 인도는 무역 협정을 위한 협상 운영 세칙을 체결했다. 협상 운영 세칙은 본격 협상에 앞서 협상 범위와 지침 등을 정하는 수준이지만, 밴스는 이를 "협상에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지난 16일 무역 협상을 위해 방문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 등 일본 대표단을 만나자마자 "큰 진전"(big progress)이라고 너스레를 떤 것의 복사판인 셈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연합뉴스)
 
일본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이르면 30일에 2차 협상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21일 "성급히 결론을 내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오는 7월20일에 참의원(상원)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이시바 총리로서는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관세전쟁'을 둘러싸고 각 국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에 도착해 24~25일 미국과 관세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미 관세 협상에 대해서는 사실상 우리 여론은 통일된 상태다. 근래 드문 상황이다.
 
<한·미 2+2 통상 협의, '우리 페이스' 지키는 것이 중요>(중앙일보), <관세 협상 최종 결정은 새 정부가 하는 게 순리>(조선일보), <트럼프 변칙에 휘말린 日, 한·미 2+2 협상의 반면교사>(문화일보), <美 "먼저 하면 이득"… 서둘다 '원스톱 쇼핑' 당하는 일 없어야>(동아일보), <이번 주 한·미 2+2 관세 담판…최대한 신중, 결정은 새 정부에>(매일경제), <美 '비관세 장벽' 압박…협상 서둘지 말고 '韓 거취' 명확히 해야>(서울경제), <빨라진 관세 협상, 최종 결정은 차기 정부가 내려야>(한겨레)
 
요 며칠 언론 사설들은 한목소리로, 협상을 서두르지 말고 예비 협의 정도만 진행하면서 40여일 후 등장하는 새 정부에 최종 결정을 맡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연한 주문이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8일 트럼프와 통화한 직후부터 바로 미국에 "맞서지 않겠다"며 저자세를 보이고 한·미가 지난해 이미 종료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협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놓는가 하면, 대통령 권한대행과 대통령의 권한 차이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데 따른 불안감이 적지 않다. 무역 등 경제 사안과 안보를 분리한다는 정부의 기본 원칙과도 다르고 게다가 방위비 문제는 현재 한·미 간 의제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
 
사실 한덕수 대행으로서는 고민할 게 별로 없는 상황이다. 통일된 국민 여론을 따르면 된다. 혹여 관세 협상을 자신의 대선 출마를 위한 성과물로 활용해보려는 의도만 아니라면 말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