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영하 30도의 냉동실에서는 아이오닉9이, 영상 50도의 사막 같은 찜통에서는 아이오닉6 N이 쉼 없이 테스트 패널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극한의 온도를 재현한 이곳은 현대차·기아의 남양연구소. 실제 도로보다 더 가혹한 환경에서 전기차가 ‘진짜 차’가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지난 23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환경시험동 강설챔버에서 아이오닉9 차량에 강설 시험을 하는 모습. (사진=현대차)
지난 23일 찾은 남양연구소는 1996년 만들어진 현대차 기술의 메카입니다. 신차와 신기술 개발, 디자인, 설계, 시험, 평가가 모두 이곳에서 이뤄집니다. 규모는 347만㎡, 근무 인력은 1만4000명에 이릅니다. 평소 정의선 회장 사무실보다 보안이 더 엄격하다는 소문처럼 기자들의 모든 스마트 기기에는 보안 스티커가 붙여졌고, 촬영 역시 철저히 차단됐습니다. 매서운 눈초리의 보안 직원들이 기자들의 동선 내내 규정 준수를 '감시'(?)하는 등 철통 보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양한 기후 조건으로 차량의 열관리 성능을 연구하는 환경시험동. 성애가 얇게 낀 아이오닉9이 영하 30도의 저온 환경 실험실에서 주행 시험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리털 점퍼도 무용지물일 만큼 차가운 공기 속에서 연구원들은 엔진과 변속기의 냉각 성능, 냉난방 공조 성능 등 차량 내 주요 열 관련 시스템의 모든 성능을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담당 연구원은 “북유럽 혹한과 유사한 조건을 반복 구현하며 개선점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반대편은 고온 환경 실험실은 중동 사막처럼 뜨거웠습니다. 영상 50도, 습도 20% 환경 속에서 아이오닉6 N이 50km로 바퀴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천장에 설치된 32개의 조명 장치가 실제 일사량을 재현하며 차량을 달궜습니다. 1분도 서 있기 힘든 더위 속에서, 운전석에는 온도 센서들을 부착한 마네킹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대신해 차량 내부의 열적 쾌적성을 측정합니다. 연구원들은 이를 통해 에어컨의 위치나 작동 방식에 따라 체감 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해 실내 쾌적성을 평가합니다. 담당 연구원은 “실험을 통해 엔진이 버틸 수 있는 한계도 함께 테스트하며, 결과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성능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3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공력시험동에서 아이오닉6 차량으로 가시화 시험을 하는 모습. (사진=현대차)
다음은 소음·진동·불쾌함(Noise·Vibration·Harshness) 실험동. 전기차 특성상 엔진 소음이 없어 미세한 풍절음(차체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이나 노면 소음에도 운전자가 민감할 수 있기에 이를 분석해 개선 방향을 찾는 공간입니다. 타이어 소음을 정밀 측정해 설계와 부품 개선에 활용하고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과 감성 품질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공기역학 성능을 시험하는 공력시험동도 인상 깊었습니다. 3400마력, 직경 8.4m의 대형 송풍기가 시속 200km 바람을 만들어 차량에 직접 쐈습니다. 바닥의 회전벨트 5개는 지면 기류를 구현하며 항력과 양력 데이터를 정밀 측정합니다. 현대차가 공개한 ‘에어로 챌린지 카’는 세계 최저 수준인 공기저항계수(Cd) 0.144를 목표로 한 콘셉트카로, 공기 저항음 감소시키는 액티브 카울 커버 등의 기술이 실험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자동차의 정숙성과 사운드 품질을 완성하는 ‘몰입음향스튜디오’ 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전기차 필수 사양인 보행자 경고음을 비롯해, 40여 개 스피커와 VR 장비로 다양한 도심·주차장 환경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소리의 방향성, 거리감을 정밀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박종서 제네시스소음진동해석팀 책임연구원은 “지역별 법규와 고객의 감성까지 고려해,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안전도를 높이는 사운드를 개발하고자 창문 구조나 소재까지 세심히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음향을 분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23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NVH동 몰입음향스튜디오에서 VR헤드셋을 착용한 연구원이 다양한 도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사운드를 평가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3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집요할 만큼의 철저한 검증과 무한 반복의 실험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고객이 마주할 수 있는 불편을 미리 짚어내고 없애려는 노력은 단순한 테스트 그 이상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을 위한 기술을 찾고 개발하는 곳. 현대차의 ‘기술 심장’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화성=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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