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베트남의 능소능대 '대나무 외교'
2025-04-22 06:00:00 2025-04-22 06:00:00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과 싸워 이긴 유일한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 전쟁(1964~1975년)에서 미국의 패배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한 미국이 처음으로, 그것도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시아 각국의 방위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닉슨 독트린'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의 정확한 승자가 누군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기습한 중국이 베트남 국경도시를 점령했지만 미군과의 실전 경험이 풍부한 베트남은 중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면서 철수했다. 베트남이 미국과 싸울 때 중국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중국에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중국군은 결국 17일 만에 철수했다. 베트남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애초 중국의 베트남 침공 목적이 캄보디아에서의 베트남군 철수였다는 점에서, 중국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이나 지난 1989년이 돼서야 베트남군은 캄보디아를 떠났다. 
 
'승자의 여유일까. 현재 베트남의 외교는 그야말로 능소능대하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맞서 국제 연대를 조직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베트남을 방문했다. 시진핑은 '항미 연대' 동참을 제안하면서 전략적 소통 강화와 철도 부설을 당근으로 제시했지만, 또 람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는 오히려 중국의 무역역조 시정을 요구하면서 미국과의 분쟁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처럼 90일간 유예되기는 했어도 트럼프가 베트남에 부과한 상호관세율이 46%에 달하는데도 말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시 주석의 '항미 연대' 제안을 보도한 반면,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 '인민보'는 시 주석의 발언을 싣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에 손을 내밀었다. 16일 베트남을 찾은 조태열 장관에게 베트남 측은 미국의 상호관세 관련 긴밀한 소통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전임 고 응우옌 푸 쫑 전 서기장이 단단한 뿌리와 유연한 가지를 가진 대나무 같은 외교를 해야 한다며 정립한 '대나무 외교'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2023년 9월 당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끌어올렸다. 미국 항공모함이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군의 전용 항구였던 다낭에 기항하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2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베트남에서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실상 바이든과 맞서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에너지 투자를 약속했다. 당시 <CNN>은 "현재 세계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지도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나라는 베트남이 거의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유일한 동맹인 한국이 베트남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동맹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에서 베트남 대나무 외교의 정신과 태도는 새길 만하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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