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공생관계…사라진 '시대정신'
시대정신 사라진 자리에 정치공학만 난무
'당권 장악·총선 승리'에 매몰 악순환 연속
2024-03-06 18:08:35 2024-03-06 18:25:52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제22대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비전과 가치의 총체인 '시대정신'이 실종됐습니다. 양극단의 대립 정치가 판치자, 대중을 이끄는 새로운 의제마저 사라졌습니다.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 배경에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운동권 청산'을 선거 구도로 내건 국민의힘이나, 공천 과정에서 '친문(친문재인) 배제'를 통해 '운동권 퇴장'으로 귀결된 민주당이나 결국엔 같은 프레임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여기엔 당권 장악과 총선 승리라는 서로의 이해 추구가 맞물렸는데요. 시대정신이 사라진 자리에 '정치공학'만 난무하는 셈입니다.
 
'건국산업화민주화'한국 정치 이끈 원동력
 
시대정신은 다이내믹한 한국 현대사 한가운데를 관통했습니다. 해방 전후 '건국'을 시작으로, 개발독재시대 땐 산업화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이후 민주화 열망이 '서울의 봄'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면서 1987년 직선제 개헌을 끌어냈습니다. 당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후 나란히 집권했는데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세계화'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보기술(IT)' 시대를 각각 선도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민참여주의를 기반으로 '탈권위'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시대정신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최근엔 배제와 혐오 등의 양극단이 횡행하면서 '정치적 내전 상태'라는 지적마저 나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극우 유튜버'와 '개딸(개혁의 딸)' 등 강성 지지층에 선을 긋지 못한 결과로 분석됩니다.
 
22대 총선에선 여야 모두 '청산' 프레임에 매몰됐는데요. 국민의힘은 총선의 프레임으로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청산'으로 내걸었습니다. 여당은 심지어 '운동권 청산'을 '시대정신'으로 규정하며 민주당을 저격하는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공천 과정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들을 운동권 출신 민주당 인사들과 '맞대결'을 펼치게 하는 방식으로 각을 세웠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마포을입니다. 여당은 86 운동권 출신 함운경 민주화운동동지회장을 전략공천하면서 이 지역 현역인 3선 정청래 민주당 의원과 '운동권 매치'를 성사시켰습니다.
 
'정권심판론'을 프레임으로 내건 민주당도 어느 순간 '운동권 청산' 구도에 동조하며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실제 민주당의 공천 파동은 비명(비이재명)계를 넘어 친문계 배제로까지 치달으면서 역설적으로 여권의 '문재인정권 심판'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예가 서울 중·성동갑 공천에서 배제된 '친문(친문재인) 핵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 기동민 민주당 의원의 공천 배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당내에선 이들의 공천 배제를 두고 "한동훈의 운동권 청산 복사판"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오전 청주 육거리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적 내전 상태"…비호감 선거만 판친다
 
문제는 서로 다른듯 하면서도 같은 선거 구도 속에 시대정신은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거대 양당이 당권 장악과 총선 승리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운동권 청산'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묶인 모양새인데요. 결국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이면에 자리 잡으면서 시대정신이 사라졌다는 지적입니다.
 
사실 현장에서의 유권자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지, 운동권 운운은 정치권의 공급자 마인드에 가까운데요. 거대 양당이 극우 유튜브, 개딸 등만 바라보며 극단적 진영논리에 의한 정치 혐오만 키우면서 민심을 대변하는 시대정신도 사라졌습니다. 
 
시대정신이 사라진 것은 이번 선거뿐만이 아닙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꼽히는 지난 대선 역시 서로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데 열중하면서 건강한 시대정신은 엿보이지 않았는데요. 이번 총선 역시 대선의 연장선이라는 평가 아래, '운동권 청산'이라는 공급자 마인드만 남고 진정한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총선 화두가 운동권 청산이라는 주장은 국민의힘 등 특정 정파의 프레임일 뿐,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 수 없다"며 "결국 거대 정당의 착각일 뿐, 유권자들은 운동권 청산이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으로 될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을 찾아 양천구갑 황희 후보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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