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 한동훈, '김건희' 놓고 혈투
'현재·미래권력' 정면충돌…'사퇴 요구'에 '즉각 거부'
'명품가방' 대응 이견…'김건희 리스크' 갈등 고조
2024-01-22 17:31:55 2024-01-22 19:19:11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4·10 총선을 앞두고 여권의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정면 충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 갈등의 이면에는 김건희 여사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한 위원장이 "국민 눈높이"를 기준으로 제시하자, 윤 대통령은 자신의 복심이었던 한 위원장마저 가차 없이 내쳤습니다. 이를 통해 김 여사에 대한 불문율과도 같던 '불가침'이 민낯을 드러냈고,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 또한 보다 '노골화' 됐습니다. 여권은 격랑 그 자체로 빨려들어간 형국입니다. 폭풍과도 같았던 주말의 충격 뉴스는 22일에도 여진을 남겼습니다. 
 
한동훈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사퇴 요구 '일축'…윤 대통령, 민생토론회 불참
 
한 위원장은 이날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비대위원장직 사퇴 요구와 관련해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를 받아들였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왔다"면서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4월10일 총선이 우리 국민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선민후사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과도한 당무 개입'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을 말씀드리지 않겠다"면서도 "당은 당의 일을 하는 것이고, 정(정부)은 정의 일을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당정 분리를 언급했습니다.
 
또 대통령실과의 갈등 원인으로 '김건희 리스크'가 꼽히는 데 대해서는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위원장은 그간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함정취재'라면서도 '국민 눈높이'를 기준으로 제시, 우회적으로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다만, 주가조작 혐의를 다룰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독소조항을 이유로, '악법'으로 규정하며 윤 대통령 편을 들었습니다.  
 
한 위원장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한 반면 윤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예정된 5차 민생토론회 참석을 전격 취소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앞서 4차례 개최된 민생토론회를 모두 직접 주재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감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권 안팎에선 한 위원장과의 갈등이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바라봤습니다. 민생토론회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대신 주재했습니다.
 
앞서 한 위원장은 전날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비공개 회동을 가졌는데요. 이 실장은 이 자리에서 한 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라는 윤 대통령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윤 원내대표는 한 위원장과 다시 만나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거센 압박에도 한 위원장은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대통령실 사퇴 요구 관련 보도에 대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이란 제목으로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한 위원장의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대통령실은 같은 날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윤 대통령이 이 비서실장과 정무 등 해당 수석들을 관저로 불러들여 관련 대책을 논의했고 이 과정에서 "인간적 관계도 끊는다"는 험한 말들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오전 국회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명품가방' 놓고 충돌…'당무 개입' 논란까지 
 
윤 대통령이 비대위원장 취임 한 달여 만에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까지 제기한 배경에는 '김건희 여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게 여권 내 중론입니다. '시스템 공천'을 외면하는 '사천' 논란은 표면적 배경일 뿐, 한 위원장이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을 건드린 것이 화를 불렀다는 해석입니다. 사천 논란 또한 김경율 비대위원이 대상자(서울 마포을)로, 그는 한 위원장이 직접 영입한 비대위원입니다. 때문에 김 여사를 겨냥한 김 비대위원의 직접적 언급 배경으로 한 위원장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가득합니다. 
 
실제 김 비대위원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원인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난잡한 생활을 지적, 김 여사를 비교 대상으로 올렸습니다. 한 위원장 역시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지난 18일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 데 이어 19일에는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압박 대열에 가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민의힘 내에서도, 특히 수도권 출마자들과 비윤계를 중심으로 김 여사의 사과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분출됐는데요. 대통령실은 문제가 된 명품백 수수 논란을 '몰카 공작', '함정 취재'가 본질이며 김 여사는 피해자로 해석했습니다. 때문에 한 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김 비대위원을 정청래 민주당 의원을 상대할 저격수로 사실상 내정하자, '사천'이라는 명분으로 공격에 나섰다는 게 대체적 시각입니다. 
 
두 사람의 충돌은 조기 레임덕과도 직결돼 있습니다. 한 위원장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압박할 정도로 여권 내 차기주자로 입지를 공고히 다진 가운데, 총선 공천이 한 위원장 주도로 이뤄지게 되면 국민의힘은 한동훈 체제로 재편되게 됩니다. 공천권도 사라진 마당에 현재권력인 대통령에서 차기권력으로 무게의 추가 이동하는 전례는 한국 정치사에서 보편적이었습니다. 아직 임기를 많이 남겨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이를 용납할 리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정면 충돌하면서 여권은 극심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인데요. 공천 등 향후 총선 프로세스를 놓고 이들의 갈등은 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비대위원장의 경우 사퇴(해산) 규정이 당헌당규에 따로 없어 갈등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한 위원장이 버티기와 함께 세력화에 성공할 경우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한 위원장이 '김건희 특검법' 국회 재표결로 반격에 나설 정도로 세력화를 이루게 되면 윤 대통령은 궁지로 몰릴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내에서 이탈표가 20표에 달할 경우 김건희 특검법은 확정됩니다. 
 
야당은 뜻밖의 호재를 반기는 눈치입니다. 민주당은 1월 임시국회 내 쌍특검법 처리도 가능하다며 입장을 바꾸는 등 두 사람의 갈등 역이용에 들어갔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특정 정당의 선거, 총선 관련해서 이렇게 노골적이고 깊숙이 개입한 사례가 있었냐"며 당무 개입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공천 개입이 법적 문제를 낳았고, 이를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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