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국회 논의가 무산됐습니다. 정부의 법 개정 의지를 믿고 분양권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일부에선 분양권 전매 후 세입자로서 실거주 의무를 채우겠다는 말도 나오는데 국토교통부는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지난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법 개정을 논의했습니다. 여기에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조항은 일부 완화하기로 했으나,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은 여야간 견해를 좁히지 못해 결국 법안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전국의 분양 아파트 계약자들은 2년에서 최장 5년까지 의무적으로 실거주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의 추산에 따르면 전국엔 66개 단지, 약 4만4000가구의 아파트에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1.3대책 믿었는데…수분양 투자자들 ‘술렁’
올해 초 정부는 분양권 전매 제한을 완화하고 실거주 의무 조항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1.3대책’을 내놓으며 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필이면 그 시점이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올림픽파크포레온 일반 분양에서 대규모 미계약이 발생한 직후여서 ‘둔촌주공 살리기’란 평가가 많았습니다. 전매제한 8년, 실거주 2년이란 족쇄를 풀어 분위기 반전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1.3대책 발표 전 분양해 비슷한 처지였던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의 장위자이레디언트, 경기 광명시 철산동 철산자이더헤리티지까지 청약 미달을 극복하고 완판에 성공한 것도 그 후광입니다. 이들 삼총사의 완판을 기점 삼아 서울과 수도권 분양시장이 회복했고, 이것이 전체 부동산 시장의 반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부는 약속대로 4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수도권 분양권 전매 제한은 공공택지 및 규제지역은 3년, 과밀억제권역은 1년, 그외 지역은 6개월로 완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올림픽파크포레온도 분양한 지 1년이 지난 다음 달부터는 전매 제한이 풀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실거주 의무 폐지가 국회에서 멈췄으니 법 개정을 믿고 계약한 수분양자들이 술렁이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올림픽파크포레온과 장위자이레디언트, 철산자이더헤리티지는 전체 세대수도 많지만 일반 분양 물량도 각각 4786가구, 1330가구, 1631가구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여기에서 수백 채씩 미계약이 발생했고, 1.3대책 발표 후에 추가 계약자 모집을 통해 완판에 성공했습니다. 즉 실거주 의무와 전매 제한이 풀릴 것으로 기대한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돼 실거주를 할 수 없는 계약자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계약자들이 실거주 의무조항 폐지 법안 무산으로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1월 올림픽파크포레온 당첨자 계약 마감일에 견본주택에서 기념촬영 중인 계약자의 모습. (사진=뉴시스)
가족전원 지방 이사 말곤 답 없어
국회 합의가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수분양자들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한편으로 법 규정을 피할 방법이 없는지 논의하는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부에선 법에 따라 분양권 전매와 실거주 의무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전매제한이 풀리면 먼저 분양권을 전매한 뒤에 아파트 입주에 맞춰 본인이 전세나 월세 세입자로 2년간 거주하면 실거주 의무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양권 매수자로선 입주할 수 없는 아파트를 사는 셈인데, 전세보증금을 높게 정해 매수자의 부담을 줄여주면 갭투자자들이 받아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실거주 기준이 ‘입주 가능일 후 3개월 내 전입신고’이므로 이론상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거래는 불가능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분양권 소유자(수분양자)와 분양권 매수자 사이의 사적 계약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만약 2년 실거주를 약속하고 계약한 후에 수분양자가 2년을 채우지 않고 이사할 경우 그 피해는 분양권 매수자에게 귀속된다”면서 “이같은 다양한 문제 소지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적 계약은 허용되지 않고, 무조건 수분양자가 집주인으로서 실거주해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몇 가지 예외가 적용되는 특별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수분양자 본인이 해외에 체류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직장, 생업 문제로 세대원 전원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이사해야 하는 경우, 군인이 지방으로 발령받는 경우, 질병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경우는 실거주를 하지 않아도 인정됩니다.
예외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반 수분양자들은 입주 가능일로부터 3개월 안에 전입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해당 호수를 LH에 넘겨야 합니다. 실거주 의무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LH는 그동안 계약자가 납입한 금액에 소정의 이자를 얹어 되사들이고 계약을 취소합니다. LH가 받아주기 때문에 재개발·재건축 조합이나 시공사로 피해가 전이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총선 후 법개정 희망 못버려
LH는 이렇게 계약 취소된 아파트를 모아서 나중에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줍줍’입니다. 지난 1년간 건축비가 많이 인상된 터라, 당시 분양가보다 현재 시세가 높은 상황입니다. 즉 올해 분양한 분양가 상한제 단지에서 많은 수의 ‘로또’ 아파트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른 투자자들이 ‘로또’에 해당하는 만큼의 피해를 본다는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내년 4월 총선 후에 여야가 다시 논의하지 않겠냐며 내심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실거주 의무 때문에 계약이 취소될 물량이 너무 많아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예상도 역설적으로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인입니다. 만약에 여야가 극적인 타협에 도달해 실거주 의무조항을 폐지한다면 올림픽파크포레온 입주 예정일인 2025년 1월 이전에는 타결돼야 합니다. 수많은 수분양자들의 기대대로 내년 총선 후에라도 국회 합의가 나올지 주목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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