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법원 판결에 하투 불 지피는 노란봉투법
현대차 파업 손해배상 1·2심 파기환송…노란봉투법과 입법 취지 유사
노동계, 노란봉투법 필두로 최저임금 등 '하투' 예고
2023-06-15 16:51:52 2023-06-15 16:51:52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공장 점거 등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불법 행위의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는 노조 구성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제약을 두는 '노란봉투법' 주요 취지와 합치한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이와 함께 금속노조는 당초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구조적인 잘못이라며 노란봉투법에 전력한다는 계획이어서 노동계의 대대적인 하투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대차 파업 손배 원심 파기…'노란봉투법' 닮은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야권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 쟁점 조항의 입법 취지와 방향이 유사합니다. 노란봉투법에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는데요.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하다가 사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입니다.
 
앞서 해당  사건 피고들은 2010년 11월∼12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참여해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습니다. 현대차는 이로 인해 공정이 278시간 중단돼 손해를 입었다며 파업 참여자 29명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일부 조합원에 대해 회사가 소송을 취하하면서 피고는 4명으로 줄었습니다. 1·2심은 조합원들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회사에 2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15일 서울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은 정부·여당 대 야당의 정쟁에 휘말린 상황입니다. 정부·여당·경영계는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노동계는 노동자를 옥죄기 위해 악용되는 반헌법적 손해배상 소송을 막아야 한다며 찬성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지난달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본회의 직회부로 의결됐는데요. 6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 부의 요구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회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노란봉투법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 가처분 신청은 물론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도 고려하는 등 여론전으로 맞선다는 계획입니다.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노란봉투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 상정에 대해 전해철 위원장과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민노총 "국회, 노조법 개정해라"…재계 "노란봉투법 경영활동 위축"
 
민주노총은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입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오늘 판결은 향후 대법원이 헌법상 노동3권 보장 취지를 충분히 살려 쟁의행위로 인한 손배 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국회는 더 이상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본회의에 상정된 '노란봉투법'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라"며 "정부·여당은 더 이상 억지 주장을 반복하지 말고 법 개정에 동참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윤 대통령을 향해서는 "입만 열면 법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은 이법 판결로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 만큼 '노란봉투법'에 대해 더 이상 거부권을 운운하지 말라"고 촉구했습니다.
 
한국노총도 지난 2월 노란봉투법이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을 당시 "그동안 손해배상·가압류 폭탄으로 고통받고 희생당하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던 수많은 노동자의 피로 일궈낸 결과"라며 환영 논평을 낸 바 있습니다. 
 
반면 재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은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불법파업·갈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면서 "노동쟁의 개념 확대로 사업조직 통폐합, 정리해고 등 경영상 의사결정을 대상으로 파업이 가능해져 파업 만능주의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금속노조는 노란봉투법을 필두로 현 정부의 노동개혁정책과 전쟁을 선포한 상황입니다. 특히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 행동권)을 확대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노란봉투법을 비롯해 최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 등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민노총이 주도하는 7월 총파업 '하투'가 확산할지 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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