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건설업계의 체감경기지수가 10년 만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금리 인상과 집값 약세 전환으로 미분양이 늘어나는 등 분양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원자재가격 상승과 사상 초유의 부동산 거래 절벽까지 겹치며 건설업계의 부담이 커진 까닭이다.
특히 레고랜드발 자산 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로 부동산PF 부실 우려가 높아지면서 건설사 조달 환경도 악화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나타난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와 구조조정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 시내 도심 모습. (사진=백아란기자)
전체 시장 상황을 보면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의 부동산 시장과 최근의 상황이 유사한 점이 많다. 지난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부동산시장의 기능 회복’을 내세우며 규제 완화책을 내놨는데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상승했던 부동산 시장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올해 5월 출범한 윤석열정부 역시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기치로 임대차 3법 폐지 등 각종 규제 완화책을 내놨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와 집값 고점 인식,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의 발목을 잡은 요인은 금리와 조달환경 악화다.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미분양이 늘고, 자금 조달 창구도 막혔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1604가구로 집계됐다. 전국 미분양 주택이 4만 가구를 넘어선 건 지난 2020년 1월 이후 2년9개월 만이다. 이는 2008년 미분양(16만5599가구)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미분양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실제 미분양은 전월 대비 27.1% 늘어난 수준으로, 전월 대비 증감률은 2015년 11월(54.3%) 이후 가장 높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건설사의 자금난도 심화되는 모양새다. 통상 분양시장 호황은 건설사의 실적과 직결되는데 금리 상승으로 미분양 주택이 증가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주택 익스포져(위험노출)에 대한 우려가 커져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금융권의 PF 잔액은 11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PF대출잔액은 2008년 76조5000억원에 견줘 59.73% 증가한 수준이다. 상반기 PF대출 연체율은 0.50%로 PF대출 부실사태가 발생했던 2013년 말(8.21%)을 하회하지만, 작년 말(0.18%)에 견주면 2배가 넘는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악화하면서 그동안 저금리 기조 속에서 수주 확대를 꾀했던 건설사의 줄도산 가능성도 커졌다는 점이다. 실제 충남 지역 중견건설사인 우석건설의 경우 지난 9월 도래한 전자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 처리되는 등 올해 들어 7월까지 국내에서는 8곳의 건설사가 도산한 상태다.
(표=뉴스토마토)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종합건설업체의 도산은 1곳으로 130곳이 문을 닫았던 2008년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취약한 지방 중소 건설사의 경우 미분양주택 증가가 금융비용 확대와 수익성 저하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안심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신규 PF 대출의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건설사의 경우 만기도래하는 대출이나 차입금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해 도산할 수 있다. 실제 시공능력평가 상위 50대 건설사를 살펴보면 올해 반기보고서를 내놓은 건설사 34곳 중 절반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작년 말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건설업체인 서한의 경우 올해 상반기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218억4946만원으로 작년 말보다 57.4% 감소했다. 이어 한화건설(-51.5%)과 한양(-50.2%), 동부건설(-45.4%), 두산에너빌리티(-42.5%), 태영건설(-28.6%), DL건설(-27.8%), 코오롱글로벌(-4.5%) 등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도 작년 말보다 줄었다. 만약 현금 흐름이 악화할 경우 흑자도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재무건전성의 뇌관으로 작용하는 미청구 공사 금액도 늘어난 상태다. 올해 상반기 도급순위 10대 건설사에서 공사를 진행하고도 발주처로부터 청구하지 못한 미청구공사금액은 13조2153억원으로 작년 말(10조9476억원)보다 20.71%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롯데건설과 태영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PF우발채무 규모가 큰 건설사이거나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설사의 경우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해진 실정이다.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연대보증, 자금보충, 채무인수 합산기준 PF 우발채무 규모가 가장 큰 건설사로 자금보충 약정 규모가 올해 상반기 기준 4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왔다.
태영건설의 조정 전 우발채무 합산규모는 2조3000억원이며 HDC현대산업개발의 PF 우발채무는 2조원으로 집계됐다. 코오롱글로벌의 경우 부채비율이 297.0%로 조정부채비율(338.1%)과 격차를 보였고 서울 등 수도권 비중이 40%를 하회하고 있다는 점이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다.
시장에서는 부동산PF 부실화에 대한 신속하고 다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지난 수년간 이어진 우호적인 부동산경기 흐름 속에서 전국적으로 부동산PF사업들이 추진됐는데, 부동산PF시장 내 금융사들의 참여 방식이 다양해지고, 유동화증권 등을 통한 자본시장과의 연계성도 매우 커져 있는 상태”라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부동산PF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부실 문제가 촉발되어 거시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신속한 대응책의 마련·실행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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