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새정부 출범 이후 첫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며 내년도 예산안 처리의 국회 협조를 요청했다.
반면 해외 순방 중 있었던 비속어와 최근의 종북 주사파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사과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윤 대통령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169석을 가진 제1당의 불참으로 국회 본회의장은 절반 이상 비었고,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처리도 불투명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한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경제와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 8월30일 국무회의에서 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전년 대비 40조원가량 줄어들었다.
윤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오른 것은 지난 5월16일 코로나19 손실보상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 이어 두 번째다. 18분 간 진행된 시정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지원'(32번)이었다. 경제(13회), 재정(12번), 투자(9번), 약자·미래(각 7회), 청년(6회), 산업(5번) 서민(4회) 순으로 강조됐다. 윤 대통령이 연설마다 언급했던 '자유'와 '연대'는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 모두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야의 대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고물가, 고금리, 강달러의 추세 속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고 경제의 불확실성은 높아졌다"면서 "북한은 최근 유례없는 빈도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위협적인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됐다"며 전임 문재인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를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면서 △생계급여 인상 △사회보험 확대 △한부모가족 지원 강화 △장애수당·장애인 고용장려금 인상 △장애인 이동권 강화 △반지하·쪽방 거주자 지원 △청년주택 확대 △기초연금 인상 등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약자 복지의 지속가능한 선순환을 위해서 국가 재정이 건전하게 버텨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시기에 국회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하여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주고, 미래 성장을 뒷받침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첨단 전략산업 육성 방안에 대해서도 "메모리 반도체의 초격차 유지와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등에 총 1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사병 월급 200만원 관련해 "2025년 205만원을 목표로 현재 82만원을 내년에 130만원까지 인상하여 병역의무 이행에 대해 합리적 보상이 매년 단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산안은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지도이고 국정 운영의 설계도"라며 "정부가 치열한 고민 끝에 내놓은 예산안은 국회와 함께 머리를 맞댈 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거듭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대장동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이날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사진=연합뉴스)
반면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 등에 반발해 시정연설에 전원 불참했다.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시정연설이 열리는 본회의장에는 민주당 의석이 비워져 있었고, 야당에선 정의당 의원 전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만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전 약 20분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김진표 국회의장 등과 환담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한덕수 국무총리,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최재해 감사원장이 자리했다.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사전환담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여당에선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정의당은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했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환담이 비공개로 전환되자 이은주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향해 "환담장에 오면서 편하셨나. 사과에는 시기가 따로 있지 않다. 사과하시라"고 요구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사과할 일은 하지 않았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헌법 시스템이 잘 작동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제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가 힘을 합쳐 이 글로벌 위기를 잘 극복하면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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