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종북 주사파' 발언으로 야당과의 협치가 더 요원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20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종북 주사파' 발언에 대한 야당 반발 관련해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들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어느 특정인을 겨냥해서 한 얘기는 아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보위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침 거기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제가 답변을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자유 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반헌법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공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이 검찰의 중앙당사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하자 "지금의 야당은 여당이던 시절에 언론사를 상대로 며칠 동안이나 압수수색을 했던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해보면, 그런 얘기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국민들이 잘 아실 거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제가 수사 내용을 챙길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다"는 말도 남겼다.
민주당은 부글부글 끓었다. 제1야당을 종북 주사파로 규정, 협치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상황에서 안보로 이슈를 전환, 보수층 재결집을 위해 의도적으로 색깔론을 꺼내들었다고 의심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윤석열정부에게 민주당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보복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중앙당사까지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명백한 야당 탄압"이라고 규탄했다.
앞서 여권에서 강경 일변도의 이념적 발언을 쏟아낸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주류인 586 세력의 이념은 무엇인가. 왜 문재인 대통령은 5년 내내 욕설을 퍼부은 김정은, 김여정 남매에게 고개 한 번 들지 못했느냐"며 "문재인정부의 실정들은 모두 낡은 좌파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적었다. 또 "민주당 주류들은 요즘도 북한은 항일무장 투쟁을 한 김일성이 만든 자주 정권이고, 대한민국은 친일파 괴뢰 정권이라는 생각을 언뜻 내비친다"며 "지금도 친북-자주 주사파적 생각이 옳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대판 위정척사에 불과하다"고 했다.
색깔론의 정점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찍었다. 그는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과거 윤건영 민주당 의원을 친북 주사파로 규정하며 수령님께 충성한다고 한 발언을 고수한 것도 모자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신영복 선생의 사상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확실한 김일성주의자"로 규정했다. 또 다음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은 총살감'이라는 과거 발언을 거둘 생각이 없다고 해 논란을 샀다. 그는 문재인정부 집권 5년이 "악몽 같았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야당을 향한 윤 대통령의 불편한 속내는 앞서 미국 순방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국제회의 참석 뒤 박진 외교부 장관 등 우리측 일행에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비속어를 써 홍역을 치렀다. 당시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OOO은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며, '이 XX들' 대상도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 거대 야당이라고 해명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대단히 신경을 쓰면서도 야당은 비속어 대상으로 치부해도 그만이라는 인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윤 대통령은 거듭된 야당의 사과 요구 등에도 해당 발언을 자막을 입혀 첫 보도한 MBC의 책임을 물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이준석계로 분류되는 천하람 국민의힘 혁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정무적으로 굳이 이런 표현을 쓸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천 위원은 "저희 베이스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도 확장성이 더 중요한 국면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에 더 호소하고 지지층 결집만 이뤄내려고 하는 메시지들이 너무 과잉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야권에서는 협치는 끝났다는 냉소도 나왔다. 박찬대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의 종북 주사파 발언에 대해 "김문수 그분의 발언하고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싶다"며 "선진국 반열에 올라와 있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색깔론을 가지고서 흔들어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전용기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은 도대체 누구와 협치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색깔론으로 정치탄압과 인권유린까지 자행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따졌다.
민주당 출신의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전날 한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갈수록 성군이 되기는 틀렸다. 포기한 것 아닌가 한다"며 "야당은 협치의 파트너라기보다는 '몽둥이로 때려잡는 게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오더니, 완전히 야당을 미친개 정도로 보는 것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여야를 막론하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유 전 사무총장과 만나려 했지만 포기한 바 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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