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올 들어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는 가운데 리딩금융(금융지주 실적 1위)과 리딩뱅크(은행 실적 1위) 달성 성과를 두고 반응이 엇갈립니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의 근간이 되는 금융지주 실적은 부각되는 반면 이자이익에 기초한 은행 실적은 역대급임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금융사 '이자놀이'를 지적하면서 비판의 화살을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지주 실적, 밸류업 강점 부각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하며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KB금융이 3조5000억원에 육박한 순이익으로 리딩금융 자리를 굳혔고, 은행 순이익 1위는 신한은행이 차지하며 리딩뱅크 타이틀을 가져갔습니다.
과거 금융지주의 실적은 통상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의 실적에 따라 판가름 났지만 최근에는 '리딩뱅크=리딩금융' 공식이 깨졌습니다. 상반기 KB금융지주의 순익 3조4357억원 중 KB국민은행이 2조1880억원의 순익을 냈습니다. 나머지 비은행 계열사의 순익 비중은 39%으로 금융지주 중 최고입니다. KB국민은행 순이익이 신한은행에 밀리는데도
KB금융(105560) 순익이 앞서는 이유입니다.
신한금융지주(
신한지주(055550)) 순익 3조374억원 중 은행 부문이 낸 순익은 2조2749억원입니다. 주력 계열사인 신한은행이 2조2668억원, 제주은행이 81억의 순익을 각각 올렸는데요. 신한금융의 비은행 계열사들은 총 9599억원의 순익을 냈지만, 비은행 계열사 순익 비중은 31% 불과합니다. 주력 계열사인 신한은행 실적이 은행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지주 실적이 뒤진 것은 신한금융으로서는 뼈아픈 부분입니다.
비은행 업권 간 자회사 실적에도 차이가 두드러졌습니다. 증권의 경우 KB증권은 3389억원, 신한투자증권은 2589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습니다. 또 KB금융 보험자회사인 KB라이프·KB손해보험 당기순익 합계는 7472억원을 기록한 반면 신한금융의 보험 자회사 신한라이프·신한EZ손보의 경우 3286억원에 그쳤습니다.
리딩금융 경쟁은 단순히 실적 경쟁을 넘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금융지주사 등 은행주들이 아직까지 저평가되고 있는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아쉬운 비은행 성과가 꼽힙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주주환원 강화 등 밸류업 계획을 지속 추진하기 위해선 은행 의존도를 벗어난 안정적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리딩금융 경쟁은 비은행 자회사 실적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자장사 비난에 표정 관리
리딩뱅크 자리를 두고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은행들은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표정 관리에 나선 모습입니다. 리딩뱅크 경쟁이 치열한 시중은행 사이에선 "1등을 다른 은행에 내주더라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조 단위 수익을 내는 은행은 예대마진을 키우면서 손쉬운 이자장사로 돈을 벌고 있다는 지적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은행들의 역대급 실적 배경에는 이자이익이 있습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올 상반기 이자이익은 17조4230억원에 달합니다. 국민은행이 5조2043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 4조4652억원, 하나은행 3조9003억원, 우리은행 3조8532억원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준금리 인하기에도 이자이익이 견고한 것은 예대금리차가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예대금리차는 은행이 고객에게 예금을 받을 때 적용하는 금리와 해당 자금을 대출해줄 때 적용하는 금리의 차이인데요.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은행은 예금을 싸게 받고 대출을 비싸게 빌려줘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구조입니다.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이자장사'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지난 6월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평균 1.418p로 직전 달보다 0.082%p 확대됐습니다. 이들 은행 예대금리차는 지난해 7월 0.434%p에서 올해 3월 1.472%p까지 9개월 연속 상승하다 지난 4월부터 소폭 하락했는데, 2개월 만에 확대 전환했습니다.
은행별로 예대금리차를 살펴보면 지난달 신한은행이 1.50%p를 기록하며 5대 은행 중 가장 큰 예대금리차를 보였습니다. 예대금리차가 두 번째로 큰 곳은 KB국민은행으로 1.44%p를 기록했습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예대금리차는 각각 1.38%p, 1.37%p였습니다.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가계대출로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해 나가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자장사를 멈추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 이자 수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은행들은 멋쩍은 표정만 짓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따라 대출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데, 예대차가 줄지 않은 것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지난 정부와 같이 이자장사 프레임이 씌워질까 조마조마하다"고 말했습니다.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가계대출로 역대 최대 이익을 경신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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