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험평가에 '중대재해 리스크' 반영 검토
2025-08-01 06:00:00 2025-08-01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앞으로 빚이 많아 채권은행의 재무안전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를 평가할 때 중대재해 발생 위험 등 잠재 리스크를 적극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금융 제재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큰 건설사와 조선사 등 제조업의 대출 심사가 보다 깐깐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 "산업재해 리스크 예의 주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31일 '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 평가 시 중대재해 리스크를 반영하는 방안과 관련해 "정성평가에서는 재무제표에서 드러나지 않는 평판 리스크 등을 평가하고 있다"면서 "산업재해로 사망 등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잠재적 리스크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채무계열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서 빚이 많아 주채권은행으로부터 재무구조를 평가받아야 하는 기업 그룹을 말합니다. 금감원은 매년 총차입금과 은행권 신용공여가 일정 금액 이상인 계열기업군을 주채무계열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주채무계열로 지정되면 정기적으로 주채권은행으로부터 재무구조 평가를 받습니다.
 
평가 결과가 미흡하면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고 정기적으로 자구 계획 이행을 점검받아야 합니다. 재무구조 평가는 대기업 그룹의 국내외 계열사 재무 정보를 기반으로 정량 평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사회적 화두로 부상한 중대재해 리스크에 대한 직간접적인 영향을 분석해 정성평가 부문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금감원은 올해 41개 계열 기업군을 주채무계열로 선정됐습니다. 주채무계열의 소속 기업체 수는 현재 6928개입니다. 전년도 36개 주채무계열(소속 기업 수 6421개) 대비 각각 5개, 506개 늘었습니다. 주채무계열에 대한 은행권 신용공여액은 371조8000억원으로 전년 338조9000억원 대비 32조9000억원(9.7%) 증가했습니다. 총차입금은 708조8000억원으로 전년 641조6000억원 대비 67조2000억원(10.5%) 늘었습니다. 
 
채무가 많은 상위 5대 계열은 총차입금 기준 SK, 현대자동차, 삼성, 롯데, LG 순으로 매년 크게 바뀌지 않지만 최근 건설 경기 악화 영향으로 유진그룹과 부영그룹 등이 주채무계열에 추가된 바 있습니다. 건설업 특성상 추락과 붕괴, 낙하물 충돌 등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으며, 외부에 노출된 작업 환경으로 온열질환에도 취약합니다. 
 
건설사를 비롯해 조선업도 산업재해에 취약한 업종으로 꼽힙니다. 조선업 특성상 제조 공정이 복잡해 하청업체가 많은데, 규모가 영세한 데다 근로 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이 많습니다. 정부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의 책임을 원청 기업에도 묻겠다는 방침이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리스크 전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산재 위험 큰 건설·조선업 타격
 
금융당국은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해 대출과 보증을 제한하는 등 금융 제한 조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중대 재해 예방을 위한 금융 부문 대책을 보고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데 경제적 불이익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며 "결국 시장의 힘에 의해 불이익을 높여 나가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를 강화하는 것은 아주 원시적인 것 아닌가"라며 "규제를 안 해서 상습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인데 대출 (규제는) 당장 바로 조치할 수 있는 부분 같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는 조만간 금융당국과 은행권, 제2금융권 여신 담당자와 중대재해 기업 관리 방안 관련 회의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금융권의 기업 여신 평가 내규와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중대재해 기업 평가 항목 개선 방안과 관련한 의견을 취합할 예정입니다. 금융위는 기업 여신 심사 내규에 중대재해 발생 기업 감점 항목을 신설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을 검토 중입니다. 
 
은행 등 금융권은 내규 강화는 가능하지만 여신 업무 기준의 급격한 변화는 거래 기업의 경영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통상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내줄 때 매출 등 재무적 부문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의 도덕성, 조직문화, 외부 사건 등 비재무적인 부분도 심사합니다. 기업의 평판 리스크가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운영 리스크로 확대돼 대출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비재무적 평가 항목에 산업재해 발생 여부 등이 명시적으로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은 기존에도 기업 대출 시 해당 기업의 재무건전성뿐 아니라 비재무 항목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표이사의 도덕성이나 윤리경영 실천을 위한 인프라 구축, 사회공헌, 법규 준수 여부 등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기존 내규를 강화하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해서 갑자기 대출을 제한하면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사망 선고를 받는 것과 다름 없다"며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타격받을 경우 소속 직원들은 물론 하청업체까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를 평가할 때 중대재해 위험 관련 잠재 리스크를 적극 방양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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