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와 더불어 살기: 학문사변(學問思辨)의 힘
2025-08-04 06:00:00 2025-08-04 06:00:00
새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성장 주도 전략으로 내세웠다. AI 기술은 18세기 증기기관 기술, 20세기 후반의 인터넷 기술 등과 같이 대표적 범용 기술로서 21세기의 산업, 군사,과학, 문화를 주도하고 바꿔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범용 기술이란 한 세대에 한 번 개발될 법한 기술로 산업과 삶의 모든 측면에 혁명적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말한다. IMF로 위기를 맞이했던 우리나라는 범용 기술이었던 인터넷 기술을 다른 나라보다 앞서 발전시키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당시 김대중정부는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구호로 IT 산업 육성을 성장 전략으로 채택했다. 이러한 IT 산업 육성 전략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보급률과 IT 인프라를 가진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IT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는 산업화에 앞선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다. 김대중정부가 새로운 비전으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처럼 새 정부도 AI 3대 강국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AI 3대 강국 비전은 단지 국가가 잘되는 청사진일 뿐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사고와 행동의 주체로 AI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고 있다. 우리는 범용 기술인 AI가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를 예측해야 한다. AI 시대는 탈전문화의 시대인 동시에 재전문화 시대이다. 글쓰기, 시각-영상 자료 제작, 프로그래밍, 법률과 경영 자문 등 이전에는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비전문가인 일반인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AI에 기반한 재전문화가 진행되고 있다. AI 시대에는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AI를 최고로 활용할 줄 아는 전문가들과 특정 전문 영역에 특화된 AI가 새로운 전문가로 부상할 것이다. AI 시대의 탈전문화-재전문화 흐름은 인터넷이 산업과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유추해서 예측해볼 수 있다. 
 
인터넷은 정보, 상품, 서비스의 흐름에서 중간 매개자가 차지하던 자리를 직접연결이 대체하는 탈중개화 시대를 열었다. 작가나 지식인은 출판사나 방송국을 통하지 않고 유튜브나 블로그로 독자와 직접연결 된다. 소비자는 유통업자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직거래한다. 유권자는 언론이나 정당이 없이 여론을 형성한다. 탈중개화되는 동시에 인터넷에 기반한 새로운 중개업자가 등장했다. 아마존, 쿠팡, 구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새로운 중개업자로 부상했다. 이제는 직접 연결 기술과 이를 활용하는 사용자가 새로운 권력이 되었다. 이것이 인터넷이 초래한 탈중개화-재중개화이다. 우리는 탈중개화-재중개화가 한참 진행 중인 가운데 AI 등장으로 탈전문화-재전문화 시대를 맞게 되었다. 
 
범용 기술은 새로이 등장할 때마다 산업구조를 바꾸었고 또한 인간 자체를 바꾸었다. 『미디어의 이해』 저자 마셜 맥루언은 인간이 발명한 도구나 매체는 “인간의 연장(theextension of man)”이라 말했다. 18세기 범용기술인 증기기관이 가져다준 새로운 발명품들, 즉 증기선 기차나 방적기계 등은 인간 손발의 연장이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보급된 스마트폰(손 안의 인터넷)과 21세기 초반의 AI는 신체의 뇌가 연장된 것이다. 스마트폰이 '감각기관의 연장'이라면 AI는 '인간 인지의 연장'이 되었다. 
 
인터넷과 AI 기술로 인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뇌를 밖으로 확장한 문명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뇌의 용량이 350cc에서 1400cc로 점점 커지며 현재에 이르렀지만, 과학과 문화의 발전에 따른 정보의 양은 그 이상 증가했다. 필요한 뇌 용량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은 “외부의 연장된 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뇌가 연장된 이 시대에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시대이기도 하다. 인류가 이룬 과학과 문화 수준에 맞는 정신 생활을 위해서 신체의 뇌와 연장된 뇌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즉 두 개의 뇌가 각자가 잘하는 일을 더 잘해야 하는 방식으로 분업하고 협업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인간의 인지 활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중용』 20장은 인간의 인지 활동을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학문사변(學問思辨), 즉 “넓게 배우기(博學), 깊이 있는 질문(審問), 신중한 생각(愼思), 밝게 분별하기(明辨)”로 세분화했다. 기존의 학문사변(學問思辨)은 AI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AI는 이제까지 인류가 축적한 지식들을 널리 학습했다(博學). 이제 인간 지능은 AI에게 질문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AI 시대에는 깊이 있는 질문 능력, 즉 심문력(審問力)을 키워야 한다. 과학혁명 이후에 인류가 축적한 지식은 전문 영역의 지식이다. 그래서 지식이 많아지면 모르는 것도 많아진다. 예를 들면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은 언어학, 사회학, 생물학, 진화론, 뇌과학 등에 축적되었지만 영역 간에 상충하는 지식들이 혹은 유사한 지식들이 혼란스럽게 쌓여 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으면 비례해서 모르는 것도 많아진다. 
 
AI는 전문 영역을 넘나들며 상충되거나 유사한 지식을 통합하게 해주고 어떤 질문도 귀찮아하지 않고 답해준다. 따라서 인간은 “물으면 모르는 것을 남겨두지 않는(問之弗知弗措也)”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 융합하는 지식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의 심문력(審問力)이다. 둘째로 생성형 AI는 연결 기계로 인간 지능의 상상력을 보완해주고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거리가 멀고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개념들을 서로 연결할 때 나오게 된다. 생성형 AI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요소를 결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아주 빠르게, 다량으로 만들어준다(이선 몰릭, 『듀얼 브레인』, 142~148쪽). AI가 인간 지능의 상상력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AI가 이렇게 만들어낸 수많은 아이디어나 선택 결과 중 어느 것을 선택하여 실행할 것인가는 인간 지능의 영역이다. 상상력의 영역의 많은 부분은 AI가 맡게 되고, 아이디어를 검토하여 최선의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능력, 즉 “밝게 분별하는 능력”은 인간 지능이 맡게 될 것이다. AI 시대에 예술 창작이나 제품 개발과 관련된 창의력은 인간 지능의 이러한 명변력(明辯力)이 주도할 것이다. 
 
셋째로 AI기술을 맹신하여 AI가 생산한 지식에 의존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AI가 넓게 학습한 자료는 인간이 만든 것으로, 여기에는 오류나 편향이 존재한다(『듀얼 브레인』, 59~74쪽). 그리고 AI는 사용자 친화적이어서 어떻게든 사용자 질문에 답을 낸다. AI는 이것이 오류인지 편향된 정보인지에 개의치 않는다. 물론 강화된 학습단계에서 인간 평가자의 피드백을 거쳐 수정하지만 인간 평가자도 여전히 편향을 갖고 있다. 서양에서도 인간의 감각이나 인지 활동은 불완전하여 인간의 지식은 원천적으로 오류임을 주장하는 회의주의 철학이 있었다. 회의주의자는 모든 지식은 오류 가능성이 있으니 판단 중지로 평정심을 찾을 것을 권유했다. 
 
자신의 생각도 의심스러운 데 남에게 배운 지식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공자는 “배우되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속임을 당하고, 스스로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다. 이는 항심 의심하고 비판하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AI 시대의 인간 지능이 맡아야 할 신중한 생각의 힘, 즉 신사력(愼思力)이다. 마지막으로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실행하기 위해 그 결과를 도덕적 기준에서 비판하고 판단하는 지혜로운 실천력을 가져야 한다. AI는 수단이고 그 목적은 사회 일원으로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AI는 사용자가 처해 있는 맥락과 복잡하게 연결된 인간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감의 많은 부분은 타인과 공감하고 사익과 공익을 조화시키는 도덕적 지혜에서 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에는 깊이 묻는 심문력과 명확히 선택하는 명변력을 높이는 동시에 도덕적 주체로서 신중히 생각하는 신사력을 가질 때, 비로소 AI와 협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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