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헌철·김기성기자]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대기업 회장들이 잇달아 불출석 방침을 정하면서 비난이 일고 있다. 이들의 출석을 강제할 마땅한 법규정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국감 시기 '회장님'들의 숨바꼭질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11일로 예정된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는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정무위는 이날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국감을 실시한다. 자연스레 일감몰아주기 등 대기업 내부 부당거래, 공정위 조사 방해, 부당 하도급 등 불공정행위, 골목상권 침해 등 시장 질서를 유린하는 대기업의 횡포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면서 증인으로 채택된 대기업 회장들이 하나둘 발을 뺐다. 불출석 사유 또한 해외출장으로 하나같이 똑같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9일 각각 중국과 베트남으로 출장을 떠난다. 앞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지난 주말 미국으로 출국했다.
해당 그룹들은 모두 “업무 차 해외출장으로 예정된 일정”임을 항변했으나, 국감 출석을 피하기 위한 '도피성 출장'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정무위 관계자는 “국감 시기에 맞춰 출장을 떠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장들의 연례행사”라고 꼬집었다.
정무위에 따르면 이들 회장은 백화점과 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 영업행태, 골목상권 침해 등 무분별한 사업 확장, 중소기업 보유주식 탈취 등이 주요 신문 요지로 잡혀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회장들은 기본적으로 국회나 검찰 출석을 제일 꺼린다”며 “특히 요즘과 같이 경제민주화니, 재벌개혁이니 하면서 반기업 정서가 극심한 상황에서의 국감 출석은 회장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앞서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역시 8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 영국 출장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그간 대형마트에 대한 각종 규제에 있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대기업 입장을 대변해왔다.
또 지난 3일에는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 회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칼은 피했지만 태안특위에는 증인으로 채택된 상황이다.
한편 시민사회 등은 국회의 의지 부족을 꼬집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여야가 대그룹 회장의 경우 증인 채택을 기피하는데다, 어렵사리 간사간 합의를 이끌어내더라도 면피성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결국 19대 국회 출범의 기치였던 경제민주화가 첫 국정감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현행법을 대폭 강화해 국감 기간 증인에 한해 출국금지 등 국회 출석을 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르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거나 증언을 거부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그간 대부분의 재벌그룹 총수들은 해외출장 등을 사유로 으레껏 국감에 불출석해 왔으며, 이같은 부당한 관행에 대해 적절한 제재가 가해진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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