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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기술사용료 지출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특허 분쟁과 기술 확보를 위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1조원 수준에 머물렀던 기술사용료는 올해 3조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특허 소송이 끊이질 않고, 기술 계약을 선점해야 하는 시도들이 반영된 결과다. 반도체 업황 부진과 상반기 실적 악화 속에서 반등을 위한 전략적 카드로 로열티 계약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다만, 기술사용료는 충당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에 급격히 늘어난 충당부채가 향후 중장기 수익성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해 로열티만 2조8000억원…10년 만에 '최고치'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기술사용료 규모는 2조802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2조7939억원을 기록한 이후 또 다시 소폭 늘어난 규모다. 기술사용료는 협상 중인 기술사용계약에 따라 향후 지급이 예상되는 비용으로 국내외 기업 간 특허 분쟁에 따라 발생하는 로열티 성격을 띤다.
특히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기술사용료 규모는 2023년 말(1조8380억원) 대비 1조원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6년 이후 2023년까지 1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던 기술시용료 규모가 지난해 1년 만에 1조원 가까이 늘어나면서 3조원대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기술사용료 규모를 4조원 넘게 늘린 바 있다. 당시 미국 애플 등과 다수의 특허 침해 소송을 벌이며 4조4437억원을 기술사용료를 부채로 계상하기도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유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글로벌 기술 보유 기업들과의 선제적 로열티 계약에 속도를 냈다.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시스코, 미국계 반도체 설계업체 램버스 등과는 10년 단위 계약을 맺으며 기술 안정성 확보에 집중해 왔다. 이로 인해 2016년부터 지난 2023년까지 기술사용료 규모는 꾸준히 1조원대를 유지했지만, 최근 기술사용료 규모가 매년 꾸준히 오르면서 지난해부터 크게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기술사용료가 다시 급증한 배경에는 글로벌 특허권 소송전에 대비한 사전 방어적 비용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허공세의 선봉에는 '특허괴물'로 불리는 미국 특허관리법인 넷리스트가 있다. 2015년 공동개발 계약 파기 논란을 계기로 삼성전자와 갈등이 시작된 이후, 넷리스트는 매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인공지능(AI) 서버용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주요 쟁점으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외에도 라디언, 네트워크-1 등과의 미국 내 특허 소송 잇따라 진행 중임에 따라 삼성전자는 관련 비용 대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최근 글로벌 특허 분쟁이 갈수록 전략화되는 만큼, 삼성전자가 기술사용료를 선제적으로 계상하는 것은 일종의 ‘특허 전쟁 대비금’으로 볼 수 있다”며 “향후 불확실한 소송 리스크를 피하고 안정적인 사업 운영 기반을 확보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측은 공시를 통해 “특정 업체와의 계약 갱신이나 종료에 따른 비용 증가는 내부적으로 기술사용료 충당부채로 사전에 반영하고 있다”며 “실제 지출은 제품 판매 및 협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적도 뒷걸음…하반기 ‘모바일 승부수’로 반전 노려
다만 기술사용료는 지출은 확정적이나 시기와 금액이 불확실한 특성상 충당부채로 처리되는 특성을 가진다. 충당부채는 발생주의 회계원칙에 따라 미래 비용이 예상되면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항목이다. 이후 실제 지출 시 차감되는 구조다.
실제 충당부채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충당부채는 2022년 7조7734억원, 2023년 9조4034억원, 2024년에는 11조3365억원으로 3년 새 3조5000억원 이상 불어났다. 충당부채는 발생주의 회계원칙에 따라 미래 비용이 예상되면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항목이다. 이후 실제 지출 시 차감되는 식이다. 문제는 미래 비용으로 처리돼 당기순이익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기업의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금 유출 가능성도 내포하기 때문에 실제 지급이 발생하면 현금흐름에도 부담이 된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수익성 또한 내리막길이다. 반도체 업황 부진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맞물리며 2분기에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2분기 매출은 74조원으로 전년 동기(74조7000억원) 대비 소폭 감소(-0.09%)했으며, 영업이익은 4조6000억원으로 56% 가까이 줄었다.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11조29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조500억원) 대비 33.8% 감소했다. 영업이익률도 6.2%에 그치며 수익성 지표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반도체 부문의 회복세가 더딘 가운데, 하반기 실적 반등 여부는 모바일과 소비자 가전 중심의 성과 회복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기술사용료 급증은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간 삼성전자는 자체 기술보다는 하드웨어 양산력에 집중하는 전략을 이어왔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보안 등 핵심 기술 중심의 ‘소프트웨어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로열티 확대는 하반기 주력 제품군의 경쟁력을 선제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오는 10일 열리는 ‘갤럭시 언팩’ 행사를 기점으로 플래그십 신제품을 공개하고, 하반기 실적 반전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갤럭시Z 7시리즈의 판매 성과에 따라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가 일부 조정될 가능성도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삼성전자가 상반기 수익성 저하를 만회하기 위해 하반기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4 제품을 내세워 반도체 회복을 노릴 것"이라며 "폴더블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신제품 중심의 하드웨어 재정비와 함께,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생태계 확장을 위해 외부 기술 제휴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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