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여부는 향후 한국 사회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위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게임에 장애나 질병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느냐 마느냐는 게임 산업의 성장과도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콘텐츠 수출의 첨병으로 성장해온 한국 게임이 또다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사회 최소 단위인 가정 내 게임에 대한 인식 수준 제고가 중요한 상황인데요. 문제는 최근 들어 정부와 관계 기관의 보호자 대상 게임 리터러시(바로 알기) 교육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족 참여 프로그램은 축소되는 가운데, 관련 교육은 대개 한두 시간짜리 특강 등 일회성으로 그치고 있는데요. 보호자 대상 게임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짚어보고 관련 전문가들의 고민도 들어봅니다. (편집자 주)
[충남 예산=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대전 격투 게임의 시초이자, 장르를 확립하고 획기적인 조작 방식을 도입한 이 게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지난달 27일 충남 예산에서 때아닌 게임 퀴즈 대회가 열렸습니다. "아, 그거!" 처음엔 엄마 아빠가 신나게 정답을 맞히더니, 나중엔 자녀들이 요즘 게임 제목을 칠판에 적어 자랑스레 들어 올립니다. 게임의 정답도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마인크래프트'로 옮겨 갔습니다.
지난달 27일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2025 게임문화 가족캠프' 참가자가 게임 퀴즈 정답을 들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보호자들 "가족 단위 행사 늘었으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게임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한 '2025 게임문화 가족캠프'가 257명의 함박웃음으로 가득한 채 1박2일간 성황리에 개최됐습니다. 가족캠프는 온 가족이 참여하는 게임문화 퀴즈대회와 가족 대항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브롤스타즈' 대회, 게임 이용 습관 개선 상담,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 교육, 콘솔·레트로·보드 게임 체험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참가자들은 온 가족이 모여 게임으로 소통하는 캠프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원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3형제 엄마 장유진(44)씨는 "게임을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이 행사를 소개받아 신청했다"며 "초·중등 아이와 물과 기름 같은 사이로 지내왔는데, 이렇게 서로 즐겁게 이해하는 활동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정 내 게임 인식 제고와 소통 증진 목적으로 열린 이 캠프는 올해 남은 기간 중에는 더 이상 열리지 않습니다. 윤석열정부 시절 예산 감액과 함께 관련 행사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7일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2025 게임문화 가족캠프'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2019년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게임문화재단을 통해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2023년 7억원이던 관련 예산은 2024년부터 올해까지 각각 6억원으로 줄었습니다. 보호자 리터러시 교육 사업 인력은 문체부 2명, 콘진원 1명, 게임문화재단 5명에 불과합니다.
가족캠프 운영 횟수도 2022년 5회에서 2023년 4회, 2024년 2회, 올해 1회로 대폭 감소했습니다. 참여 가족 수도 같은 기간 284개에서 66개로 줄었습니다.
캠프의 실효성을 체감한 보호자들은 다른 가족의 참여 기회가 사라진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 류재민(37)씨는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아빠가 되고 싶은데, 방향이 막막해 고민이었다"며 "출산율도 떨어지고 아이 키우기도 어려워진 마당에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줄이는 건 부정적"이라고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또 다른 보호자 리터러시 교육인 '게임보다 흥미로운 게임 이야기' 참여자는 매년 1만명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게임문화 가족캠프 같은 체험 행사가 아닌, 전국 각지에서 불특정 다수 보호자 수십명을 대상으로 열리는 한두 시간짜리 특강입니다. 대학 교수와 게임사 임직원, 임상 심리 전문가와 아동심리 상담사, 심리학 박사와 교사 등 80여명이 올해 강의를 맡았습니다.
이렇게 정부 운영·지원 프로그램으로 강연을 들은 인원은 2022년 1만2048명, 2023년 1만2062명, 2024년 1만639명입니다.
김경일 게임과학연구원장(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이 지난달 27일 게임문화 가족캠프에서 '게임적으로 소통하자'를 주제로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연간 1만명 교육 '이후' 부재
현재 이 교육은 일회성에 그치고 있습니다. 강연 뒤 만족도 설문조사를 마치고 '알아두면 쓸모 있는 게임 상식' 책자를 나눠 주는데요. 여기엔 게임에 대한 개념 설명과 자녀 지도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강연 설문조사에 대해 "수요자가 요청하는 주제와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향후 교육 내용에 반영해 교육의 질과 수준을 향상하고, 수요자 맞춤형 교육을 기획하는 등의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며 "매년 전문가의 만족도 분석 결과를 통해 게임 리터러시 교육 방향 및 운영 개선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강연을 들은 보호자는 설문조사에 '필요한 교육'을 적지만, 그에 대한 후속 조치를 안내받지는 못합니다. 보호자가 원할 때 다른 강연을 신청해 들을 수는 있지만, 분기·반기·연간 등 단계별 교육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강연을 들은 보호자들이 해당 강사와 고민과 경험을 쌓아갈 일정한 관계망(웹·앱)도 없습니다. 현재 보호자가 원할 때 게임문화재단에 질문을 보내 강연자 답변을 전달받는 식인데요. 정부엔 관련 상담 수요와 실제 답변 횟수에 대한 통계가 없습니다. 자녀의 학업과 여가의 균형을 고민하는 보호자에게 현행 리터러시 교육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수년간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 강사로 참여했던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특강 한 번 들은 뒤에 집에서 맞닥뜨릴 현실은 다르다"며 "전용 앱이나 웹사이트 등 보호자가 교육 이후의 고민을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후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소장은 "교육에서 다루지 못한 다양한 문제와 이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이 축적되면, 비슷한 고민을 한 이들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체부가 숫자 채우기식 리터러시 교육을 벗어나 실제로 게임 습관 개선을 이끌 수 있다는 증거와 역량을 쌓는다면, 굳이 게임을 질병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가 단단해질 것"이라며 "보호자 리터러시 교육을 더욱 실효성 있게 만들어간다면, 부모가 게임에 몰입하는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는 과정에서 일어날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대신, 부드럽지만 강력한 해결책과 전망을 세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게임은 문화'라는 구호를 반복하는 것보다 보호자에게 훨씬 와닿을 방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게임문화 가족캠프 둘째 날인 6월28일 가족 대항전 게임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맞춤형 교육 걸음마 시작
정부와 관계 기관도 보호자 리터러시 교육의 실효성 강화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선 일회성 교육을 통한 저변 넓히기는 이어갈 방침입니다. 게임문화재단 산하 게임문화교육원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보면 교육 수혜자가 아직도 적은 편이어서 일회성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교육 참여자 만족도가 높아 큰 의미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게임문화교육원은 일회성 교육을 차츰 벗어나 지속형·선택형·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전국 지역 생활 밀착형 거점 기관(학교·도서관·주민센터 등), 교육청 등과 협업 체계를 마련하는 겁니다.
보호자 맞춤형 콘텐츠 강화로 자발적 참여도 유도할 예정입니다. 교육원은 자녀 나이별 교육 시나리오와 사례, 게임 체험 중심의 실습형 콘텐츠 제공도 준비 중입니다.
게임문화교육원 관계자는 "시간 제약이 있는 보호자에게 지속적인 학습 기회 제공과 자가 학습 참여율 확대를 위한 모바일 기반 보호자 교육 플랫폼을 구축해, 다양한 콘텐츠 제공과 인공지능(AI) 상담 챗봇 등을 통한 24시간 게임 교육 질의응답(Q&A) 서비스 운영 등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우선 올해는 사전 신청 보호자 대상으로 '강연 직후 상담'을 시범 도입했습니다. 교육원은 지난달 17일 전주교육지원청에서 열린 리터러시 교육 참가자 15명 대상으로 한 시간 동안 공동 상담했습니다.
보호자 게임 체험 시범사업도 '게임! 우리 아이의 세상 엿보기'라는 주제로 하반기 세 차례 열립니다. 첫 교육은 이달 23일 부산에서 초·중등생 학부모 20명을 대상으로 두 시간 동안 열립니다. 이날 학부모들은 모바일 게임 설치·실행법을 배우고 직접 캐릭터를 만든 뒤 강사와의 대결도 해볼 예정입니다. 이후 소감을 발표하며 게임 하는 자녀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체험 교육은 단순히 게임을 이해시키는 게 아닌, 자녀가 많이 하는 게임을 접하고 자녀가 해당 게임을 왜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는 활동"이라며 "자녀의 게임 이용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부모와 자녀 간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한 게임 활용 소통법 등을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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