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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7월 9일 16:29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국내 철강업계가 오는 하반기 조선업계와 후판 가격 협상에서 가격 인상을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는 올해 상반기 중국산 후판 반덤핑 관세 부과 등을 계기로 후판 가격 인상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조선업계가 보세공장 제도를 통해 수출 목적의 수입용 후판에 대한 관세를 면제받고 있는 점, 중국발 철강 감산이 실질적으로 어려워 철강 가격 인상이 제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가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산 후판 모습.(사진=한국철강협회)
후판 가격 상승했지만 일시적 우려도
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철강업계와 조선업계 사이에 진행된 후판 가격 협상 결과 후판 가격이 소폭 인상됐다. 지난해 하반기 협상 결과 1톤당 80만원 이하로 내려갔던 후판 가격이 올해 상반기 1톤당 80만원 이상으로 다시 올라온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까지 후판 가격 협상 결과는 철강업계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국내로 수입되는 중국산 후판 등 철강 수입량이 늘며 가격 하락을 야기했고, 철강업계가 후판 가격 인상을 유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후판 수입량은 77만3000톤으로 직전연도 상반기(71만2000톤)보다 8.6% 늘어난 바 있다.
지난해 7월 현대제철이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관세 조사를 신청하며 후판 수입에 제동을 걸었다. 올해 2월 무역위원회는 중국산 후판에 반덤핑 관세 27.91~38.02%를 부과하기로 결정했고, 올해 상반기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40만8000톤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47%나 감소했다. 가격 인하를 불러오던 중국산 후판 수입량이 줄자 후판 가격 협상 결과가 철강업계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인상 폭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후판 수요가 크기 때문에 철강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강사 매출 중 후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0%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내 후판 생산량은 860만톤 수준으로 파악된다. 1톤당 80만원으로 단순 계산 시 시장규모는 7조원 수준이다. 이 중 조선용 후판 시장 규모는 40% 수준으로 추산된다. 조선용 후판 가격이 1만원만 올라도 철강업계는 후판 매출을 200~300억원가량 늘릴 수 있다.
현재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3년 치 이상 일감을 쌓아놓은 상태다. 향후 3년 이상은 후판 수요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으로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후판 가격이 높아질수록 지속적인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다.
다만, 하반기에도 철강업계가 후판 가격 인상을 안정적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과거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 협상을 위해 후판 가격 산정 공식을 세웠지만, 지난해 후판 가격 급락 이후 이 공식이 무용지물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중국산 후판 등 국내 수입 가격이 후판 가격 협상에서 큰 변수가 됐다. 중국산 후판을 포함한 철강 제품은 낮은 제조원가를 무기로 저가에 수출되며 국제 철강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하반기 협상 변수 예측 불허
후판을 포함한 중국산 철강 가격이 국산 철강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산 후판이 저렴한 가격에 수입되면서 국산 철강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판도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후판 반덤핑 관세로 인해 수입량이 주춤했고, 후판 협상 결과 가격 인상이 가능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보세공장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보세공장은 수출용 물품 제조에 한정해 수입 원료 관세를 보류해 주는 제도다. 수출용 선박이 수주 다수인 조선업계 사업 특성을 고려하면 중국산 후판에 관세가 부과되어도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다.
철강업계가 공격적으로 후판 가격 인상에 드라이브를 걸기 어려운 것 역시 보세공장 제도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산 후판 수입량이 급감했지만, 이는 산업공구, 기계류 등 내수용 수요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후판 가격 협상과 관련성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철강 가격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국 철강 감산도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중국 철강 산업이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감산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 철강업체들은 철광석, 석탄 등 철강 원료 가격 하락 덕분에 수익성을 늘린 것으로 전해진다. 전 세계 철강 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에도 중국이 수출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가격보다 더 낮아진 원료 가격에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감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다만, 정부 통제를 따르는 국영 철강업체와 달리 수익성 개선을 맛본 민영 철강업체가 감산 권고를 적극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울러 현재 중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 가운데 감산 조치가 자칫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철강산업 감산이 미미한 수준에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민간 철강사까지 감산을 강제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국내로 유입되는 중국산 후판 등 수입량이 줄어들 가능성도 불투명하며, 향후 후판 가격 협상에서 철강업계가 승기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국내 철강업계도 중국 철강산업 감산 가능성에 대해 예측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인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국 철강 감산 기대감은 지난해 내내 나왔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실제 국산 철강 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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