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방송 3법에 대한 개선안을 만들라는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발언한 것을 놓고 대통령실과 설전을 벌이다가 결국 국무회의 배석에서 제외됐습니다. 윤석열정부가 당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며 국무회의 참석을 막았던 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재명정부 또한 전 정부 인사와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면서 이 위원장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이진숙 국무회의 배제' 강수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다음 주 국무회의부터 현직 방통위원장은 국무회의에 배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오전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직접 이 대통령에게 이 위원장의 국무회의 배석이 부적절함을 전달했다는 설명입니다.
강 대변인은 "최근 감사원은 현 방통위원장이 정치 편향 발언으로 공무원의 정치운동을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공무원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은 공직사회의 신뢰를 실추시킬 우려가 크기에 주의도 따랐다"면서 "그럼에도 방통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개인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게재해 공무원의 중립의무 위반행위를 거듭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감사원은 지난해 8월 이 위원장이 여러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정치적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한 감사 결과 결정문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감사원은 국가공무원법 제65조 4항을 위반한 이 위원장에게 '주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번 국무회의 배제 사태의 출발점은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입니다. 민주당 주도로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 위원장은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방송·언론 장악할 생각이 없으니 방송 3법과 관련해 방통위 안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지시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별도 지시 사항이 내려온 것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강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지시보다 의견을 물었던 쪽에 가깝다"며 "모든 메시지는 수신자의 오해가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명했습니다.
지난 8일에는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 위원장을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강 대변인은 당일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 참석자들에게 '국무회의는 국정을 논하는 자리이기에 비공개 회의 내용을 개인 정치에 왜곡해 활용해선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고 전했습니다. 해당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이 위원장의 발언을 제지한 것으로도 전해집니다.
이진숙의 반격…"제 임기는 내년 8월까지"
하지만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기 정치는 없다'는 글을 올리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 위원장은 방송 3법과 관련해 "대통령이 '나는 방송·언론 장악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언론사 사장단을 만난 이후 보도가 나왔다"면서 "방통위 차원에서 방송 3법 개선안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시한 것과 의견을 물은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기관장으로서 방통위 정상화 노력은 당연한 일이며 그래서 관련 발언을 자주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 정치'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이 위원장을 둘러싸고 갈등이 지속되자 대통령실은 끝내 정치중립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국무회의 배제라는 강수를 뒀습니다. 앞서 문재인정부에서 권익위원장으로 임명됐던 전현희 의원 또한 윤석열정부에서 '국무회의 참석 대상이 아니다'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 의원에게 사퇴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송 3법' 등 법안 통과 관련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같은 전 정부 인사와의 충돌은 이재명정부에서도 되풀이되는 모습입니다. 이날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위원장의 자진 사퇴와 국가공무원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이 위원장이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자료 등을 추가 제출했다"며 "수사 당국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이 위원장의 위법 행위를 엄단에 처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의 임기를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위원장은 대통령실의 국무회의 배제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방통위의 소관 업무를 말씀드렸다"며 "다만 어제 국무회의 하루 만에 제가 다음 주부터 참석할 수 없다는 건 참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참석하지 않더라도 방통위 상임위원을 5인 완전체로 구성해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이재명 대통령께 간곡히 말씀드린다"고 했습니다. 사퇴 촉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현행법상 제 임기는 내년 8월 24일까지다"며 "임기가 남아 있는 동안 성실히 최선을 다하겠다. 지금 상황에서도 방통위 업무를 충실히 진행시키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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